그리스도인의 겸손

방진선·2009. 1. 31. 오후 12:59:50

그리스도인의 겸손

∙ ‘인생의 의의(Der Sinn des Lenens)’(요한네스 헷센 Johannes Hessen/왕학수역, 1933/1956),∙ ‘아래로부터의 영성(Spiritualität von unten)’(안셀름 그륀/마인라드 두프너/전언호신부역 1994/1999)

 

1.인생의 의의’는 쾰른대 종교철학교수인 저자(1889 - 1971)가 1931년부터 1932년 겨울학기동안 강의한 것을 묶은 것입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나는 이 어려운 非常時에 있어서 인생을 하나의 커다란 황야라든가 다만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강의가 그들의 생존에 새로운 의미부여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희망한다. 나는 조용한 때에 탄생한 사상을 이러한 소망으로 괴테와 함께 생각하면서 현대의 소란스런 싸움의 세대에 제시하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형제에게 제시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사무치는 마음으로 길을 추구하겠습니까”라 하며 이 책이 시청자들의 저술요청에 따른 것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성 아우구스티노, 성 토마스 데 이퀴노 성인의 사상을 기반으로 인생의 의미를 해명하며, 괴테, 키에르케고르, 니체, 타고르 등의 사상도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비판하면서 흡수하고 있습니다.

겸손은 인간이 스스로를 우연적인 즉 제약된, 유한된 존재로 이해하고 본질적으로 또는 절대적으로 무제약자, 절대자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겸손이란 가장 깊게 보면 피조물 감정(Kreaturgefühl)입니다. 겸손은 하느님의 영역에 이르는 통로를 인간에게 열어 보이기 때문에 모든 덕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겸손은 하느님의 왕국을 열어줍니다. 겸손한 사람은 개방된 마음과 감사하는 감수성으로 하느님을 대합니다. 만물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겸손은 세상의 모든 가치에 대하여 정신의 눈을 열게 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자랑이 아니고 은총이며 경이라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 겸손하십시오. 그러면 곧 그대는 부요한 사람, 강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대가 이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할 때 그대는 모든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Max Scheler). 겸손은 수동적이고 정관적인 태도가 아니고 최고도로 적극적인 태도이입니다. 겸손(Demut)는 “봉사에의 용기(Dienstmut), 봉사의 마음준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하고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려고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제왕의 위치에 있다고 망상하고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고 지배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제왕의 위치에 있다고 보고 자기는 그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생각합니다. 겸손이란 우리의 정신적 봉사의 마음의 준비-선한 것과 악한 것, 아름다운 것과 더러운 것, 사는 것과 죽는 것, 모든 사물에 대한 봉사의 마음을 끊임없이 준비하는 내면적 맥박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일부러 그 고귀함과 존엄함을 벗어버리고 모든 인간과 모든 피조물의 자유롭고 행복한 일꾼이 되시기 위해 사람에게 오신다는 하느님의 위대한 운동을 충심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느님의 이 운동을 함께 수행하여 우리의 모든 가치나 품위를 스스로 포기함으로서 - 이로 인해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않고 하느님의 운동을 함께 수행한다는 것은 神的인 것이며 그럼으로써 우리도 신성한 것에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 우리는 겸손한 것입니다. “겸손은 그리스도교의 덕행 중에서 가장 상냥하고 가장 은밀하고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덕행”(Max Scheler)입니다.

 

2.아래로 부터의 영성”의 저자(Anselm Grün, 현재 독일 뮌스터슈바르자크에 있는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신부) 영성의 역사 안에 존재해 온 여러 경향들을 ‘위로부터의 영성’과 ‘아래로부터의 영성’으로 정리하면서 참된 자아를 찾아나가는 길과 하느님을 찾아나가는 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래로 부터의 영성은 하느님께서 성서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느낌들, 우리의 육체와 이상들, 우리의 상처와 나약함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성경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느낌들, 우리의 육체와 이상들, 우리의 상처와 나약함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로부터의 영성은 명백한 목표들을 가지고 있고 이 영성은 사람들이 자기 훈련과 기도를 통해서 이 목표점들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방법들은 성서를 공부하고,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을 익히며 자기 자신에 대하여 명확히 성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성은 지난 3백년 동안 윤리신학에서 가르친 것이고, 계몽주의 시대 이래로 수덕신학에서 강조해 왔습니다. 현대 심리학은 이러한 형태의 영성을 매우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영성은 인간을 내적으로 분열시킬 위험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이상에 일치하지 못하는 자신의 실제 상황에 대하여 자주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내적으로 분열되고 병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도달하기 위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완전성을 향한 사다리를 놓은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겸손이라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만약 영웅적인 행위와 덕행을 쌓는 것으로 하느님께 다가가기를 원한다면, 이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선택할 권리를 당연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 길을 통해서 하느님께 도달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머리로 벽을 들이받는 행위와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겸손의 길을 통해 하느님께 다가가기를 원한다면, 자기 자신이 현재 실질적으로 처해있는 빈약한 처지의 심연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겸손의 길입니다. 우리는 겸손을 자신을 낮추어 작은 존재로 만듦으로써 획득하는 덕행으로 이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겸손은 우선적으로 하나의 종교적인 기본 자세를 의미하지 사회적 덕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겸손을 의미하는 독일단어 Demut는 ahd diomuoti(mhd diemuot-봉사하는 자세)에서 파생된 말로 타인에 가지는 자세, 즉 봉사하는 사회적 덕행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라틴 단어인 humilitas는 humus, 즉 땅과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humilitas는 우리가 땅에 밀착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의 세계들, 우리들이 지닌 어두운 그늘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humilitas는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아나가는 용기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가난, 곤궁, 자기비하를 tapeinosis로 표현했고, 겸손의 자세, 정신적 가난을 tapeinophrosyne로 표현하면서 이 두 어휘의 차이를 분명히 분별했습니다.

 

3. 새김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하느님을 향한 자세를 지칭하는 것이고 하나의 종교적인 덕행입니다. 겸손은 모든 종교들에서 참된 영성을 구별하는 시금석입니다. 겸손은 바로 내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깊은 장소입니다. 겸손은 하느님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겸손은 모든 덕행들을 다 내포하는 덕행이고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 중의 하나이며 그리스도인이 지닌 힘의 본질적인 원천이었습니다. 겸손은 바로 내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깊은 장소입니다. 바로 그 깊은 곳에서 참된 기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발 경제대란의 어려운 시대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위로부터의 영성’을 추구하며 영웅적인 덕행과 기도와 자기훈련에만 몰두하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을 찾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따라 모두가 처해있는 구체적인 현실의 바닥까지 내려가 실패와 무능의 체험을 기도의 장소로,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기회로 삼으며 삶의 죄스러움과 절망 속에서 자신의 유한성과 모자람과 무력감을 깨닫고 자신의 구원을 애오라지 하느님의 은총에만 의지하면서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봉사를 용기있고 대담하게 펼치는 참으로 겸손한 그리스도인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2009.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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