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성서 모임: 창세기 11장 부터

박상훈

2010. 7. 2. 오전 6:43:51

지난 주엔 "홍수 이야기"를 했지요. "창조 이야기" 처럼 이것도 기본적으론 같은 구도입니다. 창조 이야기는 하느님의 창조에 대한 경이와 찬탄을 시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창세기 1-3장의 작가는 하느님이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숭고하고 존엄하지만, 창조는 처음부터 그 안에 깊은 모순을 지니고 있다고 봤지요. 하느님의 좋고 선한 세계는 이 세계의 살아 있는 현실 때문에 잠재적으로 모순인 상태에 있습니다. 그것을 표현한 것이 "에덴 동산 이야기" 이지요.

인간의 모순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의 저자의 강조점은 인간은 회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하느님은 인간을 받아 들이고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이지요.

"홍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창조주의 의지와 창조된 현실 사이의 긴장과 모순을 다룹니다. 홍수는 실패한 창조에 대해 내리는 신적인 심판의 도구로 묘사됩니다. 여기선 하느님의 성격과 행동이 무척 변덕스럽습니다. 모두 다 쓸어 버리겠다고 했다가 노아라는 의인을 보고 마음에 들어 다시 이 세상을 살리겠다고 계획을 바꿉니다. 정말 하느님이 이렇게 변덕스럽고 자의적인 분일까요?

"홍수 이야기" 저자는 여기서 하느님의 의도와 목적이 지니는 예측 불가능성에 관심을 둡니다. 하느님이 심판에서 구조로 계획을 변경할 때, 인간 쪽에서 변한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지요. 인간은 악하든 선하든 그대로 남이 있어요. 대신 바뀐 것은, 창조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창조주로 남으려는 그 분 자신의 약속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무척 불가해한 분이고 우리 마음의 형식에 가두려 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홍수 이야기의 작가는 이 통찰을 근동 지방의  홍수 신화를 빌어와 재구성 했지요. 

여기서도 역시, 인간의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 하느님이 받아 주신다는 것, 악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배의 고통 가운데 경험했던 하느님 신앙입니다. (창세기를 비롯한 이른바 모세 오경은 이스라엘이 기원전 587년에 바빌론으로 유배된 뒤에 정리되고 편집된 문헌입니다. 그래서 이 문헌에서 유배 경험이  아주 핵심적입니다.)

이번 금요일 모임에서는 창세기 11장 30절 부터 시작하는 "신앙의 선조들" 이야기를 합니다. 50장까지 이어지는데, 조금 많긴 하지만 한 번 읽어 보시고 오세요.

특히, 12, 16, 21, 22장.

그리고 시편 136편에 무슨 내용이 있는가도 생각해 보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