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모임] 5월 15일(금) 저녁 7시

박상훈

2009. 5. 15. 오전 7:15:58

지난 시간엔 마르꼬 13장을 했었죠. 한 주를 쉬었더니,지난 번에 뭘 했는지, 기억이 없네요. 기억을 되돌려 봅시다!

13장은 내용이나 형식이나 모호한 점이 많습니다. 경고와 확신을 주는 메시지가 동시에 뒤섞여 있고,  유태교 종말론과 묵시록의 언어와 스타일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도 있습니다.

먼저 13장은 유태교 묵시록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합니다. 무엇보다 묵시록은, 지금 악의 세대를 살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공포가 아니라, 희망을 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악으로 가득 찬 이 세계는 이제 곧  하느님의 힘의 개입으로,  악인들은 정리되고 "하느님의 통치", 즉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 진다는 믿음입니다.

종말론은 성서에서 하느님의 특별한 프로그램을 뜻합니다. 무슨 프로그램? 하느님의 개입을 통해 이 세계가 마침내 완전하게 변형하는 그 "끝", 그 시간이 온다는 믿음입니다. 예수가 13장에서, 경고와 확신의 언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주장했던 것은, 그 시간이 오기 전에 격심한 고통의 시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수난과 죽음도 하느님의 이런 프로그램의 부분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또하나, 13장은 예수가 죽기 전에 하는 마지막 증언이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고통의 시간이 왔을 때, 여러분들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는 지침입니다. 거기엔 경고도 있고 격려와 희망의 말도 함께 있습니다.

성서에서 묵시록과 종말론의 언어는 자주 과장되어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묵시록/종말론의 언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공상적인 것도 아닙니다. 마르꼬의 묵시록/종말론에는 로마의 네로 황제의 폭력적 통치,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등과 같은 역사적, 정치적인 사건들이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

마르꼬의 관심은, "초월적인 실재"를 어떻게 그려내는가에 있습니다. 초월적이란 말은, 현실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말이 아니지요. 이 세계가 어떻게 하느님의 나라로 변형되는가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에, 하느님과 관련이 있는 한, "초월적"이라 부를 수 있지요. 그러나, 이 세계와도 관련이 있으니, 그것은 아주 "실제적", "정치적"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표현하는데는, 신화나 상징의 언어 말고는 없습니다. 이게 13장에 나오는 혼란스럽기까지 한 "다양한 종말론의 목소리들"입니다. 그리고 이 다양한 목소리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삶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르꼬 시대나 지금이나, 복음서의 관점으론, 여전히 악의 시대입니다. 묵시록 /종말론은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어떤 삶의 패턴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매우 성찰적인 텍스트의 하나입니다.

이번 시간부터, 예수의 수난, 죽음입니다. 14-15장을 읽으시고, 크게 세 부분으로 수난 이야기를 분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