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

제라르도

신부 · 수도원장

성 제라르도

(Gerard)

게라르도 · 게라르두스 · 제라드 · 제라르두스 · 제라르드 · 게르하르트 · 제라르

10월 3일📍 브로뉴(Brogne)🕰 +959년

성 게라르두스(Gerardus, 또는 제라르도)는 885년경부터 895년경 사이에 벨기에 남부 나무르(Namur) 지방 포스(Fosse) 근교의 스타브(Stave)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상티오(Santio)는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공작 가문 출신이고, 어머니인 플렉트루드(Plectrud)는 리에주(Liege)의 주교인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조카였다.

당시 귀족 신분의 자제들처럼 성 제라르도 역시 나무르의 베렌가르(Berengar) 백작의 궁정에서 기사 교육을 받았는데, 유혹이 많은 궁정과 군대 생활 안에서도 그의 경건함은 모든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917년경 나무르의 백작은 성 제라르도에게 프랑스 사절의 임무를 맡겼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수행원들을 파리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파리 북쪽에 있는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에서 머물렀다.

생드니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은 성 제라르도는 맡은 바 임무를 마친 후에 나무르의 공작과 스테파누스 주교의 허락을 얻어 다시 생드니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도승이 되어 성경 연구와 엄격한 고행을 실천했다.

몇 년 뒤에 사제품을 받은 성 제라르도는 자신의 영지인 브로뉴로 돌아와 옛 성당 근처에 소박한 수도원을 세우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실천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꿈속에서 사도 성 베드로(Petrus)에게 성 에우제니오(Eugenius)의 유물을 가져와 브로뉴 성당을 재건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는 생드니 수도원에서 성 에우제니오 유물 일부를 얻어 브로뉴 성당을 복원한 후 성 베드로와 성 에우제니오에게 재봉헌하고, 자신의 영지를 브르뉴 성당에 기증하였다. 923년경 수도원장이 된 그는 생드니에 수련소를 만들고, 새 수도원이 자리를 잡고 평화롭게 성장하도록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엄격히 적용하여 수도원의 규율을 회복하고 자신은 더욱 엄격한 삶을 살기 위해 수도원 근처 작은 골방에서 지냈다. 934년경 로렌(Lorraine)의 지슬베르(Gislebert) 공작으로부터 에노(Hainaut)에 있는 수도원을 베네딕토회 규칙에 따라 개혁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곳에서 그는 재속 사제들을 수도자들로 대체하고 엄격한 수도 규칙을 도입하였다.

그 뒤에는 누아용(Noyon)과 투르네(Tournai)의 주교와 플랑드르(Flandre)의 백작 아르눌프 1세(Arnulf I)의 요청으로 헨트(Gent)와 생바봉(Saint-Bavon) 수도원을 개혁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헨트(Gent)와 랭스(Reims)의 수도원들을 개혁했고, 그의 개혁 정신을 따르는 이들도 수도원 개혁에 동참하였다.

이러한 성 제라르도의 수도원 개혁 운동은 플랑드르 지방에서만 일곱 개 수도원에서 행해졌고, 그 후에 노르망디(Normandie) 지방으로까지 확산하였다.

그러나 그의 모든 개혁이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953년경 노년의 성 제라르도는 일선에서 물러나 브로뉴 수도원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영주들이 수도원 공동체의 베네딕토회 규칙 준수를 위해 협조하도록 하는 일이었으며, 스스로 새로운 수도회를 만들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의 수도원 개혁 운동은 클뤼니(Cluny) 수도원에서 시작된 개혁 운동과 동시대적이었지만, 그는 클뤼니의 개혁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독립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브로뉴 수도원의 특권을 확인하는 교황 칙서를 얻기 위해 로마(Roma)를 방문했고, 돌아오는 길에 그동안 자신이 개혁한 공동체들을 마지막으로 방문하였다.

그리고 브로뉴 수도원으로 돌아와 머물다가 959년 10월 3일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브로뉴에 안치되었고, 1131년 리에주의 주교인 알렉산데르(Alexander)가 교황 인노첸시오 2세(Innocentius II)를 대리해 성 제라르도의 유해를 기념하는 예식을 거행했는데, 이 예식은 사실상 시성식과 동등한 효과를 지닌 것이었다. 17세기에 브로뉴 수도원은 그를 기념해 생제라르(Saint-Gerard) 수도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의 축일은 10월 3일로 나무르와 헨트와 리에주 교구 등에서 성대히 기념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3일 목록에서 벨기에의 나무르 교구에 성 제라르도 수도원장이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오늘날 벨기에의 나무르 지역에서 브로뉴 수도원을 설립하고 그 초대 원장이 된 성 제라르도가 플랑드르와 로타링기아(Lotharingia, 843년 베르됭[Verdun] 조약으로 프랑크 왕국이 분할하면서 탄생한 중프랑크 왕국의 영토) 지역의 수도원 규율을 쇄신하기 위해 힘썼으며, 많은 수도원이 수도 규칙 본래의 정신을 준수하고 회복하도록 헌신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1건)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0권 - '제라르도, 브로뉴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4년, 7614-7615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