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
복자 발타사르 라바스키에리
(Balthasar Ravaschieri)
발다사레 · 발타살
복자 발타사르 라바스키에리는 1419년 또는 1420년에 이탈리아 북서부 제노바(Genova) 인근 해안 마을인 키아바리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젊은 나이에 고향에서 프란치스코회(Ordo Fratrum Minorum Observantiae, OFMObs)에 입회하여 서원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학업을 마치고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키아바리 수도원의 원장과 수도회의 제노바 관구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뛰어난 설교자로 알려졌고, 펠트레(Feltre)의 복자 베르나르디노(Bernardinus, 9월 28일)의 친구로서 그와 함께 설교자로 활동하며 최선을 다해 그의 사도직 활동을 도왔다.
그는 또한 문맹이었지만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겸손으로 영적 진보를 이룬 비나스코(Binasco)의 복녀 베로니카(Veronica, 1월 13일)의 고해 담당 사제이자 영적 조언자로도 활동했다.
그런데 그의 사도직 활동이 가장 활발해지던 순간에 그는 통풍에 걸려 점점 몸을 움직이는 것도 어려워졌다.
그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밀라노(Milano)와 파비아(Pavia)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인 비나스코의 수도원으로 은퇴하였다.
그는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성당에 들어가 미사와 성무일도를 바쳤고, 활발히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 고해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영적 조언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는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때때로 근처 숲으로 가서 은둔하며 은수자처럼 기도와 독서에 열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보았고, 또 폭설이 쏟아지던 어느 겨울밤에는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조금도 눈이 쌓이지 않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복자 발타사르 라바스키에리 신부는 1492년 10월 17일 비나스코에서 선종하여 그곳에 묻혔다. 1805년에 그의 유해를 파비아의 산타 크로체(Santa Croce) 수도원으로 옮겨 모셨다가 1811년 수도원이 해산된 후 파비아의 주사고(Giussago)에 있는 작은 마을인 바셀리카 볼로냐(Baselica Bologna) 본당의 성당으로 이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파비아를 중심으로 수 세기에 걸쳐 공경받아온 복자 발타사르 라바스키에리에 대한 공경은 1930년 1월 8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승인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17일 목록에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Lombardia州)의 비나스코에 작은 형제회의 사제인 복자 발타사레 다 키아바리 라바스키에리가 있었다고 기록하며 그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복자 발다사레 라바스키에리(Baldassarre Ravaschieri)로 불린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