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리노

주교

바울리노

(Paulinus)

바울리누스 · 빠울리노 · 빠울리누스 · 파울리노 · 파울리누스

1월 11일📍 아퀼레이아(Aquileia)🕰 +802년

성 파울리누스(또는 바울리노)는 이탈리아 북동부 우디네(Udine) 지방의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Cividale del Friuli) 인근 프레마리아코(Premariacco)에서 부유한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치비달레의 총대주교좌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사제품을 받은 후 그 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교 이전과 이후의 고전 라틴 문학뿐만 아니라 법학과 성경 · 신학 · 교부학 등 다양한 학문을 폭넓게 공부해 당대에 존경받는 학자였다.

그의 학문적 소양을 알아본 프랑크 왕국의 왕 샤를마뉴(Charlemagne)는 776년에 그를 아헨(Aachen)에 있는 궁정으로 불러 왕실 학자로 활동하도록 했다.

그는 그곳에서 왕의 스승이자 고문으로 활동하던 요크의 복자 알퀴노(Alcuinus, 5월 19일) 뿐 아니라 다른 여러 학자와도 가깝게 지냈다.

당시 아헨의 궁정 학교는 프랑크 제국 전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였었다.

샤를마뉴는 787년에 성 바울리노를 그의 고향 근교인 이탈리아 아퀼레이아의 총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주교이자 저명한 신학자로서 792년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시노드와 794년의 프랑크푸르트(Frankfurt) 시노드에 참석해 당시 이단의 하나였던 그리스도 양자론(~養子論, adoptianismus)을 단죄하는 데 힘을 보태고, 그에 관한 글도 출판하였다.

활동적인 성품을 지녔던 성 바울리노는 많은 교회를 세웠고, 아바르족(Avars, 5~9세기에 중앙아시아, 동유럽, 중앙유럽에서 활동한 몽골계 유목민족)과 슬라브족의 평화로운 복음화를 위해 힘쓰며 선교사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슬로베니아의 사도’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시인으로 시와 찬미가도 썼는데, 샤를마뉴 왕에게 신앙의 통치에 관한 유명한 시를 헌정했다고 한다.

그는 802년 1월 11일 치비달레에서 선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에는 그의 이름이 오르지 않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11일 목록에 그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아바르족과 슬로베니아인을 신앙으로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한 아퀼레이아의 주교인 성 바울리노를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에서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