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1세

교황

바오로 1세

(Paul I)

바울로 · 바울루스 · 빠울로 · 빠울루스 · 파울로 · 파울루스 · 폴

6월 28일🕰 +767년

성 파울루스(Paulus, 또는 바오로)는 교황 스테파노 2세(Stephanus II)와는 형제지간으로 700년경 로마(Roma)의 오르시니(Orsini)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라테라노 궁에서 자라며 교육을 받았다.

교황 성 자카리아(Zacharias, 3월 15일)에게 부제품을 받은 그는 752년에 동생인 성 스테파노가 교황으로 선출된 후 외교사절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교황을 보좌했다. 757년 4월 26일 스테파노 2세 교황이 선종하자 로마의 성직자와 귀족 그리고 시민 대다수는 성 바오로 부제가 동생을 계승해 스테파노 교황의 정책을 계속 이행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동생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 묻히기도 전에 교황으로 선출된 성 바오로 1세는 정치적인 문제로 한 달 정도 뒤에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로써 형제가 연이어 교황좌에 오른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났다.

교황 성 바오로 1세는 축성식에 앞서 전통대로 비잔틴 제국에 교황 선출을 알리는 대신 프랑크 왕국의 단신왕(短身王) 페팽 3세(Pepin III, 751~768년 재위) 왕에게 먼저 알리며, 스테파노 2세 교황과 맺은 협정에 충실할 것은 요구해 응답을 받았다.

그는 재위 기간 내내 교황령을 방어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힘썼다.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애쓰는 동시에 계속해서 교황령을 위협하고 침략을 일삼는 랑고바르드 왕국(Regnum Langobardorum)의 데시데리우스 왕에 대한 저항 정책을 이어갔다. 765년에 프랑크 왕국의 중재로 데시데리우스 왕과의 협정에 성공해 잃었던 교황령을 상당수 회복하였다.

그는 또한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5세 황제(741~775년 재위)의 성화상(聖畵像) 파괴 정책에 강력히 항거하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화상 공경 정책을 폐지하자 교황 성 바오로 1세는 성화상에 대한 전통적 공경을 복원할 것을 촉구하며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동방에서 성화상 파괴를 피해 도망 온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했고, 761년에 라타 가도(Via Lata)에 있는 자신의 집을 개조해 설립한 산 실베스트로 인 카피테(San Silvestro in Capite) 수도원을 그리스 수도승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프랑크 왕국의 페팽 황제에게 성화상 파괴 정책을 지지해 주도록 요청했으나 페팽 황제는 성화상 공경에 관한 로마 교황의 입장을 지지하고 받아들였다.

교황 성 바오로 1세는 수많은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의 유물을 보호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늘 약탈의 위험에 놓인 카타콤바 내의 순교자 유해들을 로마에 있는 여러 성당과 경당으로 이장하여 보호할 뿐 아니라 모든 신자가 더 쉽게 공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프랑크 왕실이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의 딸로 여기며 특별히 공경했던 로마의 성녀 베드로닐라 (Petronilla, 5월 31일)의 유해를 도미틸라(Domitilla) 카타콤바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묘지의 한 경당으로 이장하였다.

성녀 베드로닐라의 유해가 옮겨진 후 프랑크 왕국의 왕들은 이곳을 자신들의 경당(Capella regum Francorum)으로 여겼으며, 성녀 베드로닐라는 적어도 16세기까지 프랑스의 수호 성녀로 공경을 받았다.

교황 성 바오로 1세는 폭염을 피해 성벽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에 머물다가 767년 6월 28일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임시로 그곳에 안장되었다가 3개월 후에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이장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28일 목록에서 교황 성 바오로의 이름만 간단히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로마에서 교황 성 바오로 1세가 온화하고 자비로운 사람으로서 밤에 가난한 병자들의 방을 조용히 돌아다니며 음식을 제공했고, 참된 신앙의 수호자로서 콘스탄티누스 5세 황제와 레오 4세 황제에게 편지를 써서 전통적인 성화상 공경으로 되돌아가도록 촉구했다고 했다.

또한 성인 공경이 투철했던 그는 순교자들의 유해를 폐허가 된 묘지에서 찬미가와 성가를 부르며 도시 내의 대성당과 수도원으로 옮겨 그들에 대한 공경 예식을 살피도록 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1건)
  • 존 노먼 데이비슨 켈리 / 마이클 월시 저, 변우찬 역, 옥스퍼드 교황 사전 - 바오로 1세, 왜관읍(분도출판사), 2014년, 157-158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