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기메라

주교

복자 마태오 기메라

(Matthew Guimera)

마두 · 마태우스 · 마테오 · 마테우스 · 매튜 · 귀메라 · 지마라 · 히마라

1월 7일📍 아그리젠토(Agrigento)🕰 +1451년

복자 마태우스 기메라(Matthaeus Guimera, 또는 마태오 기메라)는 1376/7년경 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 남부의 해안도시인 아그리젠토(시칠리아어로는 지르젠티[Girgenti])에서 에스파냐 출신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391/2년경 16살 정도의 젊은 나이에 세상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고향에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신학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Bologna)로 갔고, 에스파냐 북동부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학업을 마치고 석사 학위를 받은 후 1400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에 그는 4년 정도 에스파냐 카탈루냐(Cataluna) 지방의 타라고나(Tarragona)에서 순회 설교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1405년부터 1416년까지는 파도바(Padova)의 산 안토니오(San Antonio) 수도원에서 수련원장 등의 직책을 수행하다가 에스파냐로 돌아왔다.

그 후 1417년 말까지 그곳에 머무르다가 다시 이탈리아의 시에나(Siena)로 돌아왔는데, 그 이유는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Bernardinus, 5월 20일)의 명성을 듣고 그를 만나 그의 수도회 개혁 정신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당시 성 베르나르디노는 몇몇 동료와 함께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의 원래 규칙을 수정 없이 철저히 따르는 옵세르반트(준수파)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 Observantiae, OFMObs)의 일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복자 마태오 기메라는 1418년에 성 베르나르디노를 만나 그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옵세르반트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성 베르나르디노의 이탈리아 순회 설교 여행에 동행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1421년경에 고향인 시칠리아로 돌아와서 성직자 개혁에 힘썼다.

당시 성직자의 규율이 매우 해이해졌고, 많은 사제가 성직매매와 연루되어 사제 본연의 직무에 태만하기 일쑤였다.

그는 시칠리아 전역을 순회하며 사제와 평신도 모두의 신앙심을 고취하고자 노력했고, 특히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에 대한 신심을 전파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는 시칠리아 작은 형제회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어 여러 수도원을 설립하고 개혁 작업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에 맞서기 위해 아라곤(Aragon)의 알폰소 5세(Alfonso V, 1416~1458년 재위)의 도움을 청하러 1427년에 에스파냐로 갔다.

시칠리아로 돌아온 복자 마태오 기메라는 1429년 시라쿠사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의 개혁 활동에 감동한 아그리젠토 주민과 알폰소 5세 국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교황 에우제니오 4세(Eugenius IV)는 1442년 9월 17일에 그를 아그리젠토의 주교로 임명하였다. 1443년에 주교로 축성된 그는 가장 먼저 성직자의 규율 이완을 막고 성직매매를 금지하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적이 생겼고, 반대자들로부터 평화를 해치고 불화를 조성한다는 누명까지 썼다.

모함과 고발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로마(Roma)에 갔고, 교황으로부터 무죄를 확인받았지만 계속되는 반발로 인해 건강마저 해쳐 결국은 3년 만인 1445년 중반에 주교직을 사임하고 팔레르모(Palermo)에 자신이 세운 산타 마리아 디 제수(Santa Maria di Gesu) 수도원으로 갔다.

하지만 그곳의 수도원장조차 그를 배척하므로 하는 수 없이 다른 지인의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다시 옵세르반트 작은 형제회로 복귀하였다.

복자 마태오 기메라는 병에 걸린 후 치료를 위해서 팔레르모의 산타 마리아 디 제수 수도원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지내다가 1451년 1월 7일 선종하였다.

팔레르모 수도원에 묻힌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그의 성덕을 기억하는 이들의 공경도 수 세기 동안 이어졌다. 1767년 2월 22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는 그에 대한 공경을 공식 승인하면서 시복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7일 목록에서 아그리젠토의 주교이자 작은 형제회 소속으로 예수님의 가장 거룩한 이름을 열렬히 공경하며 옹호했던 복자 마태오 기메라가 팔레르모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며 그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복자 마태오 기메라는 에스파냐에서 복자 마테오 데 히마라(Mateo de Gimara)로 불린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