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장 · 신부 · 증거자

마카리오

(Macarius)

마까리오 · 마까리우스 · 마카리우스

8월 18일📍 펠레케테(Pelekete)🕰 +850년

성 마카리우스(또는 마카리오)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의 이스탄불[Istanbul])에서 태어나 크리스토포로(Christophor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특히 성경 연구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짧은 시간에 성경을 암기했다고 한다.

그는 고향 근처 마르마라해 연안 무댜냐(Mudanya)에 있는 펠레케테 수도원에 들어가 마카리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이 수도원은 8세기에 세워져 사도 성 요한(Joannes)에게 봉헌된 수도원으로 보통 ‘도끼로 깎은’이란 뜻의 ‘펠레케테’ 수도원으로 불릴 만큼 가파른 절벽 위에 건립되었다.

그리고 비잔틴 제국 시대에 성상 파괴론자에 맞서 성상 공경을 옹호하는 이들의 중심지였다.

모범적인 수도승이었던 그는 오래지 않아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기적을 행하는 자라는 별명과 함께 치유의 은사를 받았음이 드러나서 몸과 마음의 치유를 받고자 하는 군중들이 늘 몰려왔다.

그의 성덕과 기적에 관한 소문을 들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성 타라시오(Tarasius, 2월 18일)는 그를 불러 사제품을 주었다.

성 마카리오는 성 타라시오 총대주교와 마찬가지로 성상 파괴주의를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로 인해 성상 파괴주의를 신봉했던 아르메니아인 레오 5세 황제(813~820년 재위)와 미카엘 2세 황제(820~829년 재위)에 의해 많은 고통을 당했다.

그는 레오 5세 황제에 의해 투옥되어 많은 고문을 받았고, 미카엘 2세 황제에 의해 석방되었으나 성상 파괴를 지지하라는 황제의 요구를 거부해 결국은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 연안의 아푸시아(Aphusia)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는 정확한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8월 18일에 유배지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830년경에 숨을 거두었다고 언급되지만, 840년 또는 850년까지 다양한 전승이 전해지고 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기념하는 성인들에 대한 간단한 내용을 축일별로 정리한 “콘스탄티노플의 시낙사리온”(Synaxarion of Constantinople)은 4월 1일에 성 마카리오를 기념한다고 했다.

옛 “로마 순교록”도 4월 1일 목록에서 콘스탄티노플에서 기념하는 성 마카리오가 레오 황제 치하에서 성상에 대한 존경심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증거자였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 마카리오가 선종한 날인 8월 18일 목록으로 옮겨서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비티니아에서 성 마카리오가 펠레케테 수도원의 원장으로서 성상들을 수호하기 위해 레오 5세 황제 치하에서 큰 고난을 겪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선종 시기는 850년으로 표기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