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인 · 순교자
성 제오르지오
(George)
게오르그 · 게오르기오 · 게오르기우스 · 제오르지우스 · 조지 · 호르헤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또는 제오르지오)는 영국, 포르투갈, 독일,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특히 베네치아(Venezia)와 페라라(Ferrara)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으며, 군인과 스카우트의 수호자이고 동방 교회에서 ‘위대한 순교자’로 공경을 받는 성인이다.
그러나 성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다만 그가 콘스탄티누스 대제(306~337년 재위) 이전의 박해 때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디오스폴리스(Diospolis)라고도 불리던 리다(Lydda)에서 순교하였다는 것과 황제 근위대의 군인이었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미 이른 시기부터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에 널리 알려졌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는 아마도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나 로마 군대에 들어가 황제의 근위대가 되었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박해 때 신앙을 지키다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6세기경에 이미 팔레스티나의 예루살렘과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 성 제오르지오의 이름으로 성당이 봉헌되었고, 동로마 제국 군인들의 수호성인으로서도 공경을 받았다.
그 외에도 시리아, 이집트 등에도 그의 이름을 딴 성당과 수도원이 많이 있었다. 6~8세기의 여러 초기 순례자들은 한결같이 리다 혹은 디오스폴리스가 성 제오르지오 공경의 중심지이며 그곳에 그의 유해와 유물이 안장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그와 함께 그의 행적에 관한 많은 전설적 이야기들이 전해졌는데, 대개는 역사적 신빙성이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 제오르지오가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전설적 이야기들 안에서 전해지는 구체적인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상당한 역사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성 제오르지오에 관해 널리 퍼진 신화와 전설적인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복자 야고보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7월 13일)의 “황금 전설”(Golden Legend)에 언급된 용에 관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성 제오르지오는 카파도키아 출신으로 호민관이라는 계급의 군인으로 어느 날 리비아 지방의 해안 도시인 실레나(Silena)를 여행하다가 어떤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은 용의 제물이 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나라는 뜨거운 입김과 독으로 사람들을 해치는 용을 달래기 위해 매일같이 어린 양 두 마리를 제물로 바쳤는데, 양들이 거의 바닥나자 양 한 마리와 사람 한 명을 제물로 바치기로 했다.
제비를 뽑아 그날 용에게 희생될 사람을 한 명씩을 뽑았는데, 어느 날 왕의 외동딸이 희생자로 뽑혔다.
왕은 슬픔에 빠져 자기 재산과 왕국의 절반을 딸의 목숨을 구하는 대가로 주겠다며 백성들에게 호소했지만, 이미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백성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한 주일 동안 딸과 함께 지낼 시간을 얻은 왕은 8일째 되는 날 어린 딸을 용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호숫가로 데려갔다.
마침 호숫가를 지나다가 울고 있는 한 처녀를 보고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성 제오르지오는 빨리 달아나라고 청하는 공주를 안심시키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공주와 함께 기다리다가 용이 나타나자 말에 올라 십자 성호로 무장하고 창으로 용을 찔러 중상을 입히고 쓰러뜨렸다.
그리고 공주의 허리띠로 용의 목을 묶어 마치 길들인 개처럼 도시로 끌고 왔다.
이 모습을 보고 도망치는 백성들에게 그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다면 용을 죽이겠다고 했다.
왕과 백성들은 그 말에 기꺼이 동의했고, 성 제오르지오는 칼로 용을 죽인 후 도시 밖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왕을 비롯해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왕은 그곳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성 제오르지오를 기념해 성당을 세웠고, 그에게 왕국의 반이라도 주겠다는 했다.
하지만 그는 왕의 제안을 거절하며 하느님의 교회들을 잘 돌보고 성직자들을 존경하며 성무를 돕고 가난한 사람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그 나라를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성 제오르지오의 순교 이야기가 이어진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다키아누스 총독이 그리스도인에게 난폭한 박해를 가해 한 달 동안에 1만 7천 명이 순교하고 죽음을 두려워한 많은 사람이 배교하고 우상에게 제사를 바쳤다.
이를 보고 비탄에 빠진 그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군복을 벗은 후 군중 한가운데로 가서 당당히 신앙을 증언했다.
이에 화가 난 총독은 그를 협박하며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잔인하게 고문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했다.
결국 그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그런데 성 제오르지오의 순교 이야기는 7~8세기에 영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어떤 이유로 그가 영국의 수호성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이름은 8세기 영국의 역사가이자 교회 학자인 성 베다(Beda, 5월 25일)의 글에도 등장한다.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그에 대한 공경을 더 널리 전파되었다.
잉글랜드의 왕인 리처드 1세(Richard I)는 자신과 자신의 병사들을 그의 보호에 의탁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군인들의 특별한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영국 기사도의 상징이 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많은 화가가 성 제오르지오의 모습을 그렸는데, 그는 대체로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깃발과 함께 갑옷을 입은 젊은 기사로 묘사되었다.
그는 주로 말 위에서 창으로 용을 겨누거나 칼이나 창으로 용을 죽이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현재 영국 해군에서 사용하는 기장은 하얀 바탕에 붉은색으로 커다란 성 제오르지오의 십자가가 그려진 모양인데, 이는 영국 국기(유니언잭) 도안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14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생겨난 신심인 ‘14명의 구난 성인’(救難 聖人, Holy Helpers) 가운데 한 명으로 공경을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23일 목록에서 순교의 화관인 성 제오르지오의 영광스러운 순교를 교회가 기념한다고 전해 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성 제오르지오 순교자가 팔레스티나의 디오스폴리스 또는 리다에서 거둔 영광스러운 투쟁은 고대부터 동방에서 서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회에서 기념하여 왔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6건)
- 고종희 저, 명화로 읽는 성인전(알고 싶고 닮고 싶은 가톨릭성인 63인) - '제오르지오', 서울(한길사), 2014년, 251-256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제오르지오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31-332쪽.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제오르지오', 서울(일파소), 2023년, 356-362쪽.
- 최익철 저, 우표로 보는 교회를 빛낸 분들 - '제오르지오', 서울(으뜸사랑), 2014년, 35-38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0권 - '제오르지오',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4년, 7643-7644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제오르지오 순교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95-96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