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

수도원장

오도

(Odo)

11월 18일📍 클뤼니(Cluny)🕰 879-942년

프랑스의 르망(Le Mans)에서 아키텐(Aquitaine) 영주의 아들로 태어난 성 오도는 어린 시절 안전을 기원했던 부친에 의해 성 마르티누스(Martinus)에게 봉헌되었다. 10대에 세속적 성공을 위해 기욤 공작의 집에서 지내기도 했으나, 10대말에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누스 수도원에 입회해 참사위원으로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파리 유학 시절 성 오도는 베네딕투스의 수도규칙을 처음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

또한 오세르(Auxerre)의 레미기우스(Lemigius)의 지도로 인문학을 공부하며 특히 음악에 심취하였다. 909년경 그는 브장송(Besancon) 교구의 봄(Baume) 수도원으로 옮겨 입회하였다.

성 베르누스(Bernus, 1월 13일)가 910년 아키텐의 기욤(Guillaume) 공작의 도움으로 클뤼니에 새로운 개혁 수도원을 설립했을 때 그는 봄 수도원에 남아 학교 교장을 맡았다. 927년 클뤼니 수도원의 초대원장이었던 성 베르누스가 선종하자 그가 제2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교황과 영주들의 지원 아래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을 이어가며 다른 수도회들도 개혁 운동에 동참하도록 하여 많은 참여를 이끌어냈다.

지역 군주들마저 성 오도에게 자신들 지역에 있는 수도회의 개혁을 요청했고, 결국은 이탈리아에 있는 수도원 개혁까지 관여하며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 운동을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성 오도는 수도자들에게 성 베네딕투스의 수도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하기 위해 침묵과 고행을 강조했다.

특히 수도자가 침묵하지 않는다면 선행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또한 그는 수도자들이 기도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전례를 강조했다.

그래서 클뤼니 수도원은 성음악과 함께 하는 다양하고 장엄한 전례 예식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 오도는 찬미가를 비롯해 윤리와 구원에 관한 글들을 남겼고, 오리악(Aurillac)의 성 게랄두스(Geraldus, 10월 13일) 전기를 기록했다.

출처 (1건)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오도, 클뤼니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418-6419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