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 · 교부 · 교회학자
성 암브로시오
(Ambrose)
암브로시우스 · 앰브로스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또는 암브로시오)는 갈리아(Gallia)의 지방 장관으로 재직한 아우렐리우스의 아들로 339년경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에서 태어났다.
밀라노의 성녀 마르첼리나(Marcellina, 7월 17일)와 성 사티로(Satyrus, 9월 17일)와는 형제 사이이다.
그는 부친이 사망한 후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로마(Roma)로 이주하여 인문 교육을 받아 수사학과 법학 외에 그리스어에도 능통하였다.
어머니가 선종한 후에는 맏이인 성녀 마르첼리나의 돌봄을 받았다.
성 암브로시오는 가문의 전통에 따라 국가 관리의 길을 택해 뛰어난 실력과 좋은 가문을 배경으로 빨리 출세하였다.
그는 시르미움(Sirmium, 오늘날 세르비아의 스렘스카미트로비차[Sremska Mitrovica])의 지방 법원에서 잠시 근무하다가 지방 장관 프로부스(Probus)의 고문이 되었고, 그의 추천으로 370년에 에밀리아 리구리아(Aemilia-Liguria)의 수도인 밀라노의 집정관이 되었다.
성 암브로시오가 그 지방을 다스리던 때 밀라노에는 서방 교회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대표자인 아욱센티우스(Auxentius)가 주교로 있었다.
아욱센티우스는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364~375년 재위)의 도움으로 교회에서 파문당했음에도 불구하고 374년에 죽을 때까지 밀라노의 주교로 재직하였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 후 후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정통 교리를 따르는 신자들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발생하였다.
집정관인 성 암브로시오는 밀라노의 질서 회복을 위해 이 문제에 개입하였다.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정통 교리를 따르는 신자들을 중재하면서 성 암브로시오는 성당에 모여 있던 신자들에게 평화적 방법과 대화를 통해 화해를 추구하자고 연설하였다.
이때 뜻밖에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성 암브로시오가 주교로 선출되었고, 그는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성 암브로시오는 세례도 받지 않은 예비신자였다.
그래서 그는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결정을 따르는 주교로부터 세례성사를 받은 뒤, 8일 후인 374년 12월 7일 주교품을 받았다.
주교직은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이다.
그리고 밀라노는 로마 제국 서부 지역의 행정 중심지였기 때문에 주교 역시 불가피하게 정치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개종자들, 수많은 이교도와 아리우스 이단에 동조하는 그리스도인들 등 모든 문제를 새 주교인 성 암브로시오가 해결해야만 했다.
다행히 지방 정부의 지사로 있던 성 사티로가 공직에서 사임한 후 밀라노로 와서 교구의 세속적 행정 업무를 도우며 성 암브로시오가 영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좌하였다.
주교가 된 후 성 암브로시오는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희사하고, 수도자와 같이 청빈과 극기의 생활을 하면서 신학과 성경 등을 연구하였다.
그에게 신학을 가르쳐 준 사람은 훗날 그의 후계자가 된 성 심플리치아노(Simplicianus, 8월 15일) 신부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당대의 유명한 설교자가 되었고, 아리우스를 반대하는 서방 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성 암브로시오가 주교품을 받은 지 약 1년 만에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그라티아누스 황제(375~383년 재위)가 즉위하였다.
새 황제의 고문관이 된 성 암브로시오는 황제를 설득하여 니케아 신앙 고백을 따르도록 하고 서방에서 아리우스파를 축출하는 법안을 만들게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황제가 전투에서 막시무스에게 살해되자 성 암브로시오는 다시 막시무스를 설득하였다.
그는 로마의 원로원 회의실에 승리의 여신상과 제단을 재건하려는 로마의 집정관 심마쿠스(Symmachus) 일파의 시도를 분쇄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385년에는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어머니로 아리우스주의 추종자인 황후 유스티나의 영향으로 밀라노의 성당들을 일단의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내주라고 명한 발렌티니아누스 2세 황제(375~392년 재위)의 명령에 성공적으로 저항하였다. 390년 테살로니카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로마 총독을 살해하자 그에 대한 징벌로써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379~395년 재위)가 군인들에게 진압을 명령했을 때, 군인들의 무차별 진압으로 인해 7,000여 명이 살해당하였다.
이에 성 암브로시오는 황제에게 범죄의 중대함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서 성 암브로시오는 참회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공식 참회 행위로 보속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제는 이에 순순히 응해 성탄 때 황제복 대신 참회복으로 갈아입고 통회하였다.
성 암브로시오는 항상 다음과 같은 원칙 밑에서 행동하였다. “황제는 교회 안에 있다.
그는 교회 위에 있을 수 없다.” 392년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갈리아에서 아르보가스트(Arbogastes)에 의하여 살해되고, 그들의 대표로 부상한 에우게니우스는 우상 숭배를 재건하려고 시도하였다.
성 암브로시오는 그들의 살인과 공격을 공개적으로 비난함으로써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마침내 제국 내에서 우상 숭배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395년 1월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심한 질병으로 밀라노에서 사망하자 성 암브로시오가 그의 장례 때 기도하고 설교하였다.
그 후 2년 뒤인 397년 4월 4일 성 암브로시오도 밀라노에서 선종하였다.
고령의 성 심플리치아노 신부가 그를 계승하여 밀라노의 주교가 되었다.
성 암브로시오의 시신은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성 암브로시오에 대한 공경은 일찍부터 시작되었고, 그가 4월 4일 주님 부활 대축일 전날인 성토요일 이른 아침에 선종했지만, 11세기부터 그가 주교로 축성된 12월 7일에 축일을 기념해왔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4일 목록에서 밀라노에서 성 암브로시오 주교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신앙의 수호자이자 주교로서 헌신적인 노력과 학문과 기적을 통해 당시 아리우스파 이단에 널리 퍼져 있던 이탈리아가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오게 했다고 전해 주었다.
그리고 12월 7일 목록에서 밀라노에서 거룩함과 가르침으로 보편 교회를 고귀하게 만든 주교이자 교회 학자인 성 암브로시오의 서품식이 거행되었다고 적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4월 4일 목록에서 밀라노에서 성 암브로시오 주교가 성토요일에 죽음을 정복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러 갔다며, 그의 축일을 주교로 축성된 날인 12월 7일 전례 안에서 기념한다고 했다.
그리고 12월 7일 목록에서 밀라노의 주교이자 교회 박사인 성 암브로시오가 4월 4일에 선종했지만, 특히 이날 그가 아직 예비신자로서 밀라노 시장으로 재직하던 중 유명한 밀라노 교구의 주교직을 받았기에 기념일로 지낸다고 했다.
또한 참된 목자이자 신자들의 스승이었던 그가 모든 이에게 사랑을 베풀고, 아리우스주의에 맞서 교회의 자유와 올바른 신앙 교리를 강력하게 옹호했으며, 성경 주석과 찬미가를 통해 백성들의 신앙심을 드높였다고 기록하였다.
성 암브로시오는 초기 교회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로마 제국이 쇠퇴해 가던 서방 세계에서 그리스도교의 부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 인물이었다.
또한 세속의 권위에 대항하여 교회의 독립과 자주성을 옹호했던 탁월한 행정가이면서, 성경 · 교의신학 · 신비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설교를 통해 설파한 위대한 신학자였다.
그는 설교를 통해 이단 사상에 빠져있던 성 아우구스티노를 이끌어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도록 했으며, 387년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사건은 그 당시 사회를 온통 뒤흔들어 놓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성 암브로시오는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8월 28일),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9월 3일)와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가운데 한 명으로 추앙받는다.
또한 그는 “신비론”(De mysteriis)과 “성사론”(De sacramentis)이란 책에서 주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그리고 성체성사에 대해 자세히 다뤘다.
그는 또한 시편을 대중적인 찬미의 기도로 활용하도록 가르친 첫 번째 인물이다.
그밖에 그의 주요 저서로는 “성직자들의 직무론”(De Officiis Ministrorum), “동정녀”(De Virginibus), “신앙론”(De Fide) 등이 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종종 벌집과 함께 묘사되는데, 이는 그의 언변이 꿀처럼 달다는 뜻과 함께 소년 시절 벌떼와 연관된 전설에서 유래하였다.
그리고 채찍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참회를 상징한다.
성 암브로시오는 밀라노와 양봉업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7건)
- 고종희 저, 명화로 읽는 성인전(알고 싶고 닮고 싶은 가톨릭성인 63인) - '암브로시오', 서울(한길사), 2014년, 339-347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41-144쪽.
- 암브로시우스 저, 최원오 역, 성직자의 의무, 서울(아카넷), 2020년.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암브로시오', 서울(일파소), 2023년, 345-356쪽.
- 지그마르 되프 · 빌헬름 게어링스 편, 한국교부학연구회 하성수 · 노성기 · 최원호 역, 교부학 사전 – 암브로시우스(밀라노의), 강원도 횡성군(한국성토마스연구소), 2022년, 633-647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8권 - '암브로시오',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1년, 5874-5882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대전(성바오로), 2002년, 305-307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