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시아 제로사

설립자 · 수녀원장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

(Vincenza Gerosa)

가타리나 · 게로사 · 빈센시아 · 빈센차 · 빈센티아 · 빈첸차 · 빈첸티아 · 빈켄차 · 빈켄티아 · 카타리나 · 카테리나 · 캐서린 · 까따리나

6월 28일🕰 1784-1847년

성녀 빈켄티아 제로사(Vincentia Gerosa, 또는 빈첸시아 제로사)는 1784년 10월 29일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베르가모(Bergamo) 외곽의 로베레(Lovere)에서 부유한 가정의 딸로 태어나 세례를 받고 카테리나 제로사(Caterina Gerosa)라는 이름을 얻었다.

네 자매 중 맏이였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왔다.

그녀는 내성적이고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에 오래 다닐 수 없었지만, 일찍부터 아버지와 삼촌들이 운영하던 가죽 가공업에 종사하며 근면성과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그녀는 가업을 도우면서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등 소박하고 평범한 신앙생활을 이어갔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신앙심과 가난한 사람들, 특히 실업 상태에 놓인 젊은 여성들을 향한 헌신을 키워갔다.

그런데 1796년부터 시작된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침공 이후 그녀의 삶은 경제적 어려움과 아버지와 여동생들의 잇따른 죽음, 그리고 삼촌들과의 의견 차이로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1814년에 세상을 떠나는 등 비극적인 일들을 계속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사건들 모두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고통을 감내해 나갔다.

끊임없이 기도하며 본당에 헌신했고, 여성 기도회를 조직해서 모임과 피정 그리고 가사 노동에 대한 실용적인 교육 등을 제공하였다.

그녀는 삼촌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사업을 운영하게 되었고, 상속받은 재산을 지역 사회를 위한 자선사업에 사용했다.

특히 병자들의 간호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병원을 설립하여 직접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 했다. 1824년, 마흔 살 무렵의 그녀는 로베레 출신으로 교사로 일하던 17살의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Bartholomea Capitanio, 7월 26일)를 만나 친분을 나누며 그녀에게 병원 운영을 맡겼다.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는 상당한 나이 차이와 다른 성격에도 불구하고 성녀 카테리나 제로사가 자선에 기반해 가난한 사람들, 특히 소녀들의 교육을 돕는 종교 기관을 설립하려는 자기의 뜻을 이루어줄 이상적인 동반자임을 깨달았다. 1832년 가을에 두 사람은 ‘콘벤티노’(Conventino, 작은 수녀원)라고 불리는 작은 집에서 자선 수녀회(또는 로베레 자선 수녀회)를 설립하고 그해 11월 21일 로베레의 산 조르조(San Giorgio) 성당에서 서원을 했다.

성녀 카테리나 제로사는 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ius de Paul, 9월 27일)을 본받으려는 뜻에서 빈첸시아라는 수도명을 선택했다.

두 명의 서원자들은 당시 신설 수도회는 기존 수도회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규정에 따라 성녀 요안나 앙티드 투레(Joanna-Antide Thouret, 8월 24일)가 작성한 규칙을 채택하였다.

그 수도회는 성 빈첸시오 드 폴이 설립한 ‘애덕의 수녀회’(Soeurs de la Charite, 오늘날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의 규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 수도회와 연합하고자 했으나 당시 프랑스와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도회 설립 후 불과 8개월 만인 1833년 7월 26일에 그토록 열정적이었던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가 26살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도 받았지만, 영적 지도자인 안젤로 보시오(Angelo Bosio) 신부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두 사람이 시작한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녀는 초대 수녀원장으로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헌신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하느님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탁월한 조직력을 지닌 성녀 빈첸시아 게로사는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사회적 고통을 극심했던 롬바르디아 지역에 새로운 수도원을 계속해서 세우며 빠르게 성장시켰다.

그녀는 자신을 비천한 피조물로 간주했으며 십자가상의 주님의 권능과 안배를 위해 늘 기도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십자가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더 배울 것이 없다.”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와 성녀 바르톨로메아 가피타니오가 함께 설립한 수도회는 1840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Gregorius XVI)의 승인을 받아 롬바르디아 전역뿐 아니라 트렌토(Trento)와 베네토(Veneto) 지역까지 빠르게 확산하였다.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는 교황청 시성부 자료에 따르면 1847년 6월 20일 63세의 나이로 고향인 로베레에서 선종하였다.

그녀가 선종했을 당시 171명의 수녀가 있었고, 21세기 초에는 그 수가 약 5,2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다른 자료에서는 그녀가 선종한 날을 6월 28일로 기록하고 있다.

그녀에 대한 시복 절차는 1906년에 시작되었고, 1933년 5월 7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다.

그리고 성년을 맞은 1950년 5월 18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와 함께 성인품에 올랐다.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의 전례 기념일은 6월 28일로 정해졌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28일 목록에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로베레에서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가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와 함께 자선 수녀회를 설립했다고 기록하였다.

한편 그들이 설립한 수도회는 1884년부터 ‘아기 마리아의 수녀회’(Suore di Maria Bambina, [영] Sisters of Holy Child Mary)로 불렸는데, 이는 수도회가 소장한 아기 마리아 성상과 관련한 기적 때문이었다. 1950년 설립자들이 시성된 후에는 수도회의 공식 명칭을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와 빈첸차 제로사의 자선 수녀회’(Suore di Carita delle Santi Bartolomea Capitanio e Vincenza Gerosa, [영] Sisters of Charity of Saints Bartolomea Capitanio and Vincenza Gerosa, SCCG)로 변경하였다.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는 이탈리아에서 성녀 빈첸차 제로사(Vincenza Gerosa)로 불린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