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그 때 예수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났다" (마태17,2).
세 사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구세주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변모 장면은 그리스도 관상의 한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켜,
그 분 인성의 일상사와 고통스런 여정 안에서 그 분의 신비를 깨닫고,
성부의 오른 편에 앉으신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영원히 드러난 신적인 광채를 알아보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제자의 임무이며 따라서 우리 각자의 임무입니다.
관상의 모범이신 성모님
그리스도 관상에서 성모님께서는 그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탁월한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성자의 얼굴은 특별히 성모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모님의 태중에서 자라시면서
인간적으로 그분과 닮은 외모를 물려받으셨는데,
이 닮음은 한층 더 돈독한 영적인 결합도 이끌어냅니다.
그 누구도 성모님만큼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았던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의 눈은
주님의 탄생 예고를 받아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을 때에
이미 예수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몇 달 뒤에 성모님께서는 그분의 현존을 느끼시고
그분의 모습을 마음에 그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으시고 "아기를 포대기에 사서 말구유에 눕히시며"(루가 2,7)
성모님께서는 당신 육신의 눈으로 아드님의 얼굴을 바라보실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언제나 흠숭과 경탄에 가득찬 성모님의 눈길은 예수님을 떠난 적이 결코 없습니다.
때로는, 잃어버린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시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루가 2,48)고
하셨을 때처럼 물어보는 눈길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처럼(요한 2,5 참조)
예수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고 더욱이 드러나지 않은 감정을 깨닫고
그 뜻을 내다볼 수 있는 꿰뚫어 보는 눈길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때 그 눈길은 특히 십자가 아래에서처럼 슬픔의 눈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어느 모로 산고를 겪는 어머니의 눈길이었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외아드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드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를 진정한 새 아들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요한 19,26-27).
그리고 부활절 새벽에는 부활의 기쁨에 빛나는 눈길이었을 것이고,
마침내 오순절에는 성령을 넘치도록 받아 불타는 눈길이었을 것입니다.(사도 1,14).
성모님의 기억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사시며,
그 분의 말씀은 무엇이든 소중히 간직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 (루가 2,19; 2,51 참조).
성모님의 마음에 새겨진 예수님의 기억은
모든 일에서 언제나 성모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당신 아드님 곁에서 보내신 삶의 여러 순간들을 묵상하게 하였습니다.
그 기억들은 어느모로 성모님께서 지상에 사시는 동안
몸소 끊임없이 바치셨던 '묵주 기도'를 이루었습니다.
바로 성모님의 체험에서 시작된 묵주기도는 더없이 훌륭한 관상기도입니다.
이러한 관상의 차원이 없으면 묵주기도는 그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이를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관상이 없는 묵주기도는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아져 기도문만을 반복하는 위험을 초래하게 됩니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기억하기
성모님의 관상은 무엇보다도 먼저 기억입니다.
우리의 기억(zakar; 히브리어음역 '자카르' 기억)이라는 말은 성서적 의미에서 이해하여야 합니다.
기억은 하느님께서 구원 역사 안에서 이루신 일들을 현존하게 합니다.
성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정점에 이르는 구원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건들은 '어제'의 일만이 아니라 구원의 '오늘'입니다.
성모님께 그리스도를 배우기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뛰어난 스승이시며,
계시하시는 분이시자 계시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분께서 가르치신 것을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그분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성모님보다 더 좋은 스스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느님편에서는,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충만한 진리로 이끄시는 내적 스승이십니다.
(요한 14,26; 15,26; 16,13 참조).
그러나 피조물 가운데서 성모님보다 그리스도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으며,
그리스도의 신비를 깊이 깨닫도록 우리를 더 잘 이끌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닮기
그리스도인 영성은 자기 스승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어야 하는
제자의 본분을 그 고유한 본질적 특성으로 삼고 있습니다.(로마 8,29; 필립 3,10.12 참조)
세례 때에 넘치게 받은 성령으로 신자들은
그리스도이신 포도나무에 가지처럼 접붙여지며(요한 15,5 참조)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가 됩니다.(1고린 12,12; 로마 12,5 참조)
그러나 이러한 처음의 결합에는
언제나 그분을 닮아가는 동화의 여정이 응답을 하여야 합니다.
곧 제자의 삶이 갈수록 더욱더 그리스도의 논리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필립 2,5).
사도의 말씀대로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어야" (로마 13,14; 갈라 3,27) 합니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묵주기도의 영적여정에서,
그리스도께 동화되려는 이 목표는 이른바 '우정'의 길을 통하여 추구됩니다.
이 길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삶으로 들어가, 그분의 감각으로 "숨쉬게" 됩니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께 기도하기
뮥주기도는 묵상이며 간청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 꾸준히 기도하는 것은 어머니의 전구가 당신 아드님의 마음에서 모든 것을
얻어주실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묵주기도는 도한 선포와 탐구의 길로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여러 차원의 그리스도인 체험에 끊임없이 제시합니다.
그 특징은 기도와 관상으로서, 그리스도의 마음에 그리스도인 자신을 결합시켜줍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동정마리아의 묵주기도 ROSARIUM VIRGINIS MARIAE]
제 1장에서 발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