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시인이 나이 쉰을 넘어 쓴 ‘성탄을 쉬흔 번도 넘어’라는 시가 있습니다.
저도 이제 성탄을 쉰 번도 넘게 맞이했습니다. 구상 시인의 이 시는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성탄을 쉬흔 번도 넘게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권능의 천주만을 모시고 있어/
저 베들레헴 말구유로 오신/ 그 무한한 사랑 앞에/ 양을 치던 목동들처럼/ 순수한 환희로 조배할 줄 모르옵네.// 성탄을 쉬흔 번도 넘게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허영의 마귀들이 들끓고 있어/ ‘지극히 높은 데서는 천주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좋은 사람들에게 평화’/ 그날 밤 천사들의 영원한 찬미와 축복에/ 귀먹어 지내고 있습네.// 성탄을 쉬흔 번도 넘게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안일의 짐승만이 살고 있어/ 헤로데 폭정 속, 세상에 오셔/ 십자가로 완성하신/ 그 고난의 생애엔 외면하고/ 부활만을 탐내 바라고 있습네.// 성탄을 쉬흔 번도 넘게 맞이하여도/ 나 자신 거듭나지 않고선/ 누릴 수 없는 명절이여!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는 성탄을 수없이 맞이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떠한 예수님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따라 성탄의 의미는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를 헤아리시어 가장 높은 분께서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신 그 크신 사랑에 고개 숙여 경배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