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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 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벌써 꽤 오래 전 일이네요. 저를 검진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큰일 났다'며 즉시 입원시켰습니다. 그리고 '절대안정'이란 팻말을 제 침대 머리맡에 붙여놓았습니다. 조금만 움직이려 하면 어느새 간호사 선생님들이 달려와서 혼냈습니다. 멀쩡하게 잘 돌아다니다가 꼼짝 없이 갇힌 신세가 되니 정말 기가 차지도 않았습니다. 제 발로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했는데,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산다는 것, 누군가로부터 도움 받지 않고 내 힘으로 산다는 것, 정녕 큰 감사거리이자 큰 은총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병자의 경우 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 말기 중풍병자였습니다. 병세가 어지간했으면 부축이라도 받아서 예수님께로 왔을텐데, 들것에 실려 온 것을 봤을 때 거의 식물인간에 가까운 병자였음이 확실합니다.
중풍병자는 그 누군가가 도와줘야만 겨우 밥 한 숟가락 뜰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크게 선심 써야만 겨우 '볼일'도 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는 일이 오랜 세월 중풍병자가 해왔던 전부였습니다. 그저 환자의 목숨이 떨어질 날만 기다리는 것이 환자 가족의 바람이었습니다. 중풍 병자를 거두고 있던 가족들의 고초도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환자 못지않게 답답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중풍병자 가족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전해집니다.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가족들은 '혹시나'하는 희망을 안고 들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들것에 실었습니다. 가족들은 큰 기대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집 앞에 당도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치유를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와 가족들로 주변은 인산인해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가자니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간절히 희망했기에 가족들은 무리인 줄 알면서도, 예의가 아닌 줄을 알면서도 한 가지 묘안을 짜냅니다. 집 바깥에 나있는 계단으로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지붕을 조심스럽게 뜯어냈습니다. 들것에 줄을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예수님께서 앉아계시는 방 한 가운데로 천천히 내려 보냈습니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일, 해도 해도 너무한 일, 도무지 예의가 아닌 일,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가족들의 병자를 향한 극진한 마음을 눈여겨보십니다. 가족들의 병자를 향한 '팀플레이'를 높이 평가하십니다. 끝까지 병자를 포기하지 않은 가족들의 지극정성 앞에 탄복하십니다. 치유를 향한 그들의 적극성, 구원받고자 하는 그들의 능동성, 한번 사람답게 살아보겠다는 간절하고도 열렬한 마음 앞에 예수님의 마음 또한 움직입니다.
오늘 제 안에 들어있는 중풍병자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칠 수 없는 심각한 마음의 질병을 바라봅니다. 제 힘으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형제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번 새 삶을 살아보겠다는 본인의 적극적 의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의 자비, 연민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저 역시 침상에 누운 채 예수님 자비의 손길만을 기다립니다. 주님께서는 고맙게도 이런 말씀을 던져주십니다.
"애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냥 '네 병을 치유시켜주마'가 아니라 죄를 용서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단지 외적으로 드러난 병에 대한 치유뿐만 아니라 내적 치유까지 동시에 선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환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졌습니다. 너무나 많은 인파에 지레 겁을 먹고 집으로 발길을 되돌린 환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병자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결과 예수님을 만났고, 그로 인해 치유와 구원을 받은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만남, 그분과 만남을 통한 치유와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적극적 의지와 노력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절박한 마음으로,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얼마나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있습니까?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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