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 용서의 이유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부녀자가 외간 남자와 부정한 관계를 갖게 되면 그 여인을 벼랑으로 끌고 가서 떨어뜨려서 죽이는 관습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한 여인이 잘못을 범했습니다. 마을 원로 회의는 다음 날 새벽에 그 여인을 처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인의 남편은 그 결정이 내려지자 사라져서 처형시간까지 나타나지 않았고, 형은 예정대로 집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오후에 보니 죽었어야 할 여인이 남편과 함께 집에 있었습니다. 어찌된 연유일까요? 처형 전날에 남편은 밤새도록 배에서 그물을 가져다가 벼랑 중간에 쳐놓았고, 이 덕분에 부인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남편의 정성에 감탄해서 더 이상 여인의 죄를 묻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용서를 실천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더구나 거듭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용서하기란 너무도 힘겨운 일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어려움을 감안해서 일곱 번 정도 용서하면 충분하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 즉 무한대로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거의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요구입니다. 어떤 종이 왕에게 일만 달란트나 되는 빚을 졌다가 탕감을 받습니다. 한 달란트는 노동자가 대략 20년은 일해야 벌 수 있는 액수인데, 일 만 달란트라면 헤아릴 수 없이 큰 액수입니다.
그런데 이 종이 나가다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이는 일만 달란트의 50만분의 일정도- 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그를 닦달해서 빚을 다 받아냅니다. 바꾸어 말하면, 헤아릴 수 없이 큰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형제의 작은 허물을 용서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은 종을 불러다가 야단을 칩니다. “이 몹쓸 종아,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어서 왕은 그 종이 자신의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둬 두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제1독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남을 동정할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자기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는가?”(집회 28,4) 우리가 받은 크나큰 “주님의 자비를 깨닫고”(본기도), 이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 역시 자비를 베푸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꾸준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
|
댓글 1
용서란 분노를 표현하는 행동양식을 하느님의 가르침으로 승화시켜 자기 를 한단계뛰어넘는자기 초월 현상이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