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요안나·2006. 2. 15. 오후 10:40:17
용서의 이유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옛날 어느 섬에 아주 엄격한 관습이 있었습니다.

부녀자가 외간 남자와 부정한 관계를 갖게 되면 그 여인을 벼랑으로 끌고 가서 떨어뜨려서 죽이는 관습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한 여인이 잘못을 범했습니다.

마을 원로 회의는 다음 날 새벽에 그 여인을 처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인의 남편은 그 결정이 내려지자 사라져서 처형시간까지 나타나지 않았고, 형은 예정대로 집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오후에 보니 죽었어야 할 여인이 남편과 함께 집에 있었습니다.

어찌된 연유일까요? 처형 전날에 남편은 밤새도록 배에서 그물을 가져다가 벼랑 중간에 쳐놓았고, 이 덕분에 부인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남편의 정성에 감탄해서 더 이상 여인의 죄를 묻지 않았답니다.

용서는 한 사람을 죽음의 나락에 빠지지 않게 해 주는 그물과 같습니다.

하지만 용서를 실천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더구나 거듭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용서하기란 너무도 힘겨운 일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어려움을 감안해서 일곱 번 정도 용서하면 충분하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 즉 무한대로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거의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요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거듭 용서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비유로 설명해 주십니다.

어떤 종이 왕에게 일만 달란트나 되는 빚을 졌다가 탕감을 받습니다.

한 달란트는 노동자가 대략 20년은 일해야 벌 수 있는 액수인데, 일 만 달란트라면 헤아릴 수 없이 큰 액수입니다.

 

그런데 이 종이 나가다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이는 일만 달란트의 50만분의 일정도- 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그를 닦달해서 빚을 다 받아냅니다.

바꾸어 말하면, 헤아릴 수 없이 큰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형제의 작은 허물을 용서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은 종을 불러다가 야단을 칩니다. “이 몹쓸 종아,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어서 왕은 그 종이 자신의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둬 두라고 명령합니다.

인간은 하느님께 큰 용서를 받고 있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인간들은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무자비한 종처럼 이웃에게 용서를 거절한다면, 이미 받은 용서마저도 무효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1독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남을 동정할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자기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는가?”(집회 28,4)

예수님은 죄 없는 분이지만, 우리 죄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은 분입니다. 신앙인은 이런 예수님과 하나 된 사람들(제2독서)로서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크나큰 “주님의 자비를 깨닫고”(본기도), 이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 역시 자비를 베푸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꾸준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댓글 1

요안나·2006. 2. 15. 오후 11:42:48

용서란 분노를 표현하는 행동양식을 하느님의 가르침으로 승화시켜 자기 를 한단계뛰어넘는자기 초월 현상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