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 · 의사
복자 유베날리스 안키나
(Juvenal Ancina)
안치나 · 주베날리스
유베날리스 안키나(Juvenalis Ancina)는 1545년 10월 19일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의 포사노(Fossano)에서 지방 귀족 가문인 두란도 안키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례 받을 때에 포사노의 수호성인인 나르니(Narni)의 성 유베날리스의 이름을 따서 요한 유베날리스(Joannes Juvenalis)라 부르게 되었다.
그의 부친은 그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프랑스의 몽펠리에(Montpellier) 대학교에 보냈지만, 그는 사보이아(Savoia)의 몬도비(Mondovi)로 갔고 부친의 사망 후에는 파도바(Padova) 대학교를 다녔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토리노(Torino)에서 철학과 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자신의 평소 소망대로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인술을 펴기 시작하였다.
그는 게임이나 오락을 해본 일이 없다.
그의 유일한 오락은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시를 쓰는 것이 고작이었고, 교회와 국가 간의 중대사에 지극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성 특히 토마스 모어(Thomas More, 6월 22일)에 관한 두 편의 풍자시를 썼고, ‘그날 분노의 날’에 대한 메시지에 매료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기도와 묵상에 더욱 몰두하고 세상일을 경시하기 시작했으며 하느님을 위한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사보이아 공작의 주치의로 초청을 받아 1575년에 로마(Roma)에 갔다가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를 만나 1578년에 오라토리오 회원이 되었고, 이어서 1582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1586년 나폴리(Napoli)로 간 그는 10여 년 동안 사목적이고 문화적인 다양한 활동을 통해 큰 명성을 얻었다.
활발한 선교활동을 하면서도 늘 봉쇄생활을 갈구했던 그는 1596년 살루초의 주교로 임명하고자 한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갔다.
주교직에 오르는 것을 주저했던 그는 마지못해 1602년 주교품을 받고 살루초의 주교가 되었다. 1604년 8월 중순 그는 교구내의 한 수도회와 수녀회 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던 중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 수사가 머무는 수도원 식사에 초대되었다가 독이 든 포도주를 마시고 병에 걸려 그달 30일 숨을 거두었다.
카르투지오회의 한 수도승은 세례자 요한이 두려움 없는 설교의 대가로 순교를 받아들였던 것처럼 그의 죽음을 두고 ‘순교자적인 죽음’이라고 말했다.
요한 유베날리스 안키나 주교는 189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어 복자품에 올랐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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