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
성 마르코
(Mark)
마르꼬 · 마르꾸스 · 마르쿠스 · 마크 · 말구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22일 목록에서 예루살렘에 저명하고 학식이 깊은 성 마르쿠스(Marcus, 또는 마르코) 주교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사목한 최초의 이방인 출신 주교로 안토니누스 황제(161~180년 재위) 치하에서 그의 짧은 주교 재임기가 순교의 영광으로 열매를 맺었다고 전해주었다.
그에 대해서는 카이사레아(Caesarea)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가 그의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에서 간략히 언급했는데,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년 재위) 때 시몬 바르 코크바가 이끄는 반란(Bar Kokhba Revolt, 제3차 유대-로마 전쟁, 132~135년)이 종결되면서 로마 제국에 의해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지역 접근이 금지되고, 예루살렘을 로마의 식민지인 ‘아일리우스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재건하면서 예루살렘 성전 복원의 희망도 사라졌다.
이 새로운 도시명은 하드리아누스 황제(Publius Aelius Trajanus Hadrianus)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되고 유대교의 율법이 탄압을 받으면서 이방인으로 구성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점점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이때 이방인 출신으로서 예루살렘 교회를 다스리게 된 주교가 바로 성 마르코였다.
그런데 그의 출신이나 성장 과정, 주교 재임 기간이나 죽음에 대해서 확실히 알려진 바는 없다.
서방 교회 전례에서는 전통적으로 10월 22일에 성 마르코를 기념해 왔다.
그리고 성 마르코 주교를 박해의 공포로 흩어진 예루살렘 교회를 재통합하기 시작한 인물로 보았다.
그러면서 중세의 순교록 문헌에서 그가 안토니누스 황제 때 순교한 순교자로서 묘사되었다.
이러한 순교 전승은 9세기에 비엔(Vienne)의 주교였던 성 아도(Ado, 12월 16일)와 우수아르(Usuard)의 순교록을 거쳐 옛 “로마 순교록”에 전해지면서 주교로 임명된 직후 순교의 영광을 받았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초기 에우세비우스의 기록에는 그의 죽음과 순교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단지 예루살렘의 교회의 첫 이방인 출신 주교로만 언급되었고, 그의 죽음의 시기나 상황에 대해서도 기록되지 않았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22일 목록에서 초기 기록에 언급되지 않은 성 마르코의 순교 관련 내용을 삭제하였다.
그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주교인 성 마르코는 이방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었는데,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박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흩어져 있었으나 성 마르코 주교는 자신의 신앙과 성실함으로 신자들을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고 기록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