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 (마르코 1, 11)
아이를 하나. 둘. 셋.을 낳았습니다.
아이와 처음 얼굴을 마주하던 그 순간의 감격은
세상의 어떤 말로도 나타낼 수가 없겠습니다.
숭고하고 거룩한, 놀라운 '사랑'의 체험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는데 필요한 돌봄의 시간들을 살면서
주고 주고 또 주고. 돌보고 감싸고 용서하고. 그리고, 늘 또다시 희망하는
사랑의 그 '내용'들을 배워가리라 하였습니다.
놀라운 신비로 내게 왔던 아이들 하나. 둘. 셋.
끝없이 감사하고 끝없이 사랑스럽기만 할 것 같던 그 생명들에게
어느새 나는
불평하고, 화내고, 실망하며, 눈흘기는 어미가 되어 있습니다.
그토록 감격을 주었던 그 생명력이 이제 없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게도 사랑스럽던 그 인격특성이 이제 사라지거나 변한 것도 아닌데
아마도 내가, 내 사랑이, 변한 듯 싶습니다.
항구한 사랑을 살지 못하는 나를 생각합니다.
처음 재롱스럽던 그 모습에는 기뻐하였지만
이제 자라 서로 맞지않는 것들을 보며 불평하는
나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놀라운 사랑을 알게 되었지만
'내' 그릇 안에 그 사랑을 간직하지 못하고
친절하고. 오래참고. 온유하고. 늘 바라는,
그 사랑의 내용들을 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 틀리면 얼마나 틀렸을까..^^
사랑이 있으면, 칠월 땡볕에 파 밭을 메어도 즐겁고
얼굴에 곰보 흉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하는데
내가 사랑이 아닌 탓에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 먼저 기뻐하지 못하는 것을..
참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은, 참인데
내가 참사람이 아닌 탓에, 사랑을 살아내지 못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댓글 3
새해에는 다짐해 보세요.. "차카게 살자." 고... 그러면 두루 두루 행복해 할 겁니다. 아이들도, 남푠도..ㅋㅋ
구구절절 와 닿습니다. 큰 아이가 '엄마~'하고 매달렸을때 '왜이래?' 하며 매몰차게 부리쳤던 일들을 늘 후회하며 미안해 하지만 그 아이는 그것을 기억못한답니다. 감사하게도...
정말 공감이 갑니다. 아이들은 늘 빨리 용서하고 잘 잊어주었어요, 감사하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