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복음 루카 20,27-40
제1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의 국방상이었던
뉴턴 베이커(Newton Baker)의 감동적인 경험담입니다.
전쟁 중 유럽의 어느 야전 병원에서 한 병사를 보았는데
그는 두 다리와 한 팔, 그리고 두 눈마저 잃은 불행한 청년이었지요.
이 청년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도 강하게 남아서
베이커 장관은 이 병원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 “
그때 그 청년이 죽지 않고 살았느냐?”고 물어보았답니다.
그런데 병원 원장이 놀라운 말을 하는 것이에요.
“그 병사는 이 병원에서 자기를 간호해 주던 간호사와 결혼했어요.
그러니 산 것이 틀림없겠죠.”
그 후 몇 해가 지나 베이커 씨는 국방상을 사임하고
유명한 존스 홉킨스 대학의 재단 이사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졸업식에 갔다가
박사 학위를 받는 졸업생을 보고는 몹시 놀랐답니다.
왜냐하면 박사 학위를 받는 청년이 바로 야전 병원에서 본,
거의 희망이 없어 보였던 그 병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베이커 씨는 일부러 앞으로 나가
졸업장을 받는 청년의 손을 잡고 격려의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오히려 베이커씨를 이렇게 위로하는 것이었다.
“베이커 장관님, 은퇴하셨다는 것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보람 있는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니
낙심하지 말고 더 힘차게 사십시오.”
베이커 씨는 이때만큼 자기가 생에 대하여
용기를 가진 적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다른 이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어려운 시련과 아픔을 겪은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 내게 다가온
자신의 참기 힘든 시련과 아픔을
하나의 짐으로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결코 다가와서는 안 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아픔과 시련을 주신 주님을
원망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바로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일이
하나의 축복이며 은총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것을 축복과 은총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에 연연하고 미래에 대해서 끊임없이 걱정하는
어리석음을 간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지금이라는 시간에 충실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 복음의 말씀을 통해 분명히 하십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 시대에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으로,
이사악 시대에는 이사악의 하느님으로,
야곱 시대에는 야곱의 하느님으로 함께 하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을 살고 있는 여러분들의 하느님으로 함께 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의 시간에만 살고자 한다는 것은
현재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피하려는 큰 잘못이라는 것이지요.
지금이라는 현재라는 시간을 누리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래서 감사의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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