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마리아·2006. 11. 3. 오후 4:11:34
요즘 많이 날씨가 쌀쌀합니다. 낮에는
느끼기 힘들지만, 새벽에는 기온의
변화를 확실하게 알 수가 있지요.
 
기도하러 경당에 들어갈 때, 방에서
입고 있는 복장을 그대로 하면 얼마나
추운지 몰라요. 그래서 저는 항상
 
두꺼운 옷을 하나 더 걸치고 경당에
들어간답니다. 그런데 문득 경당의
기온이 궁금했습니다. 경당 안의
 
온도가 도대체 몇 도 길래 이렇게
추위를 느끼는가 라는 의문이 생겼거든요.
17도. 경당 안의 온도계가 가리키고
 
있는 온도입니다. 분명히 여름의 기온
보다는 낮은 기온이지요. 하지만 한
겨울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기온입니다.
 
왜냐하면 이 경당의 온도가 한 겨울에는
영하로도 떨어지거든요. 따라서 봄이
오면서 경당 안의 온도가 10도만 넘어도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17도가 된다면? 그때는 더운 날씨죠.
똑같은 17도입니다. 봄에 느끼는 17도와
 
가을에 느끼는 17도의 차이는 왜 이렇게
다를까요? 즉, 봄의 17도는 더운 반면,
가을의 17도는 왜 춥다고 느낄까요?

우리들의 삶 안에서도 이런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똑같은 고통과
시련을 당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순간을 견디기 힘든 시간으로
여기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오히려
은총과 감사의 순간으로 생각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름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계시고 안계시고의 차이일까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 곁에
항상 가까이 다가오셨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들처럼
어떤 날에만 가까이 하고, 또 어떤
날에는 멀리하시는 분이 아니지요.

오늘 복음만 보아도 알 수가 있지요.
사람들은 안식일이라고 해서 치료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라는 이유를 들어서 치료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서 당신이 오히려 더 큰 고통과
 
시련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수종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안식일이라고 해서
 
사람들 곁을 떠나야 한다면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시련이 너무나 안쓰러웠던
것이지요.  우리들의 고통과 시련을
 
느끼는 그 차이는 바로 나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결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과
 
시련을 느끼고, 당신께서 함께 했기
때문에 고통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을
 
느끼고 함께 하려는 마음이 내 안에
있느냐 없느냐가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괜한 분에게 원망을 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왜 나를 이렇게 각박하고 험한 세상에
그냥 내치시냐고……. 정말로 사랑의
하느님이라면 나의 이 고통과 시련을
 
제발 좀 없애달라고…….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내게 있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이기심으로 인해서
 
주님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이 세상 것에 대한 욕심으로 주님의
자리를 내 안에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자그마한 고통과 시련에도 쉽게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고통과 죽음을
가져오게 할 안식일 치유도 거침없이
행하셨던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을
 
배신하고 있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배신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주님을 배신하지 않고 주님과
진정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어떤 고통과 시련을 경험해도
 
감사와 기쁨을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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