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1월 29일(월) 복음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실제로 본 사람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한두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마귀’ 또는 동양식 버전인 ‘귀신’이다.
우선 흥미로운 것은 성경에는 대부분 ‘귀신’보다는 ‘귀신들린 상태’ 또는 ‘더러운 영’ 등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곧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악한 세력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귀신을 우리는 가끔 세상에서 본다.
지난번 탄핵사태가 났을 때 나는 사람들이 ‘귀신에 홀리지 않고서야’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총선을 치르고 보니까 그런 생각은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한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그 똑똑한 국회의원들이, 학자들이, 언론들이 입에 거품을 품고 달려들어 요절을 낼 것처럼 법석을 떨
었다.
그리고 그 사태가 끝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조용해졌다. ‘미쳤다’는 말까지는 쓰지 못하겠지만 분명 제정신
은 아니었다.
무엇에 홀렸을까? 지역주의·당리당략·개인의 이해관계? 하여간 무엇에 홀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핵문제나 작전권 문제도 그렇고, 부동산 투기 문제도 그렇다. 지금도 방방곡곡에 나붙는 아무개 아들 고시
합격이라는 현수막도 그렇다.
같은 물건이라도 백화점에 높은 가격을 매겨놓은 상품이 더 잘 팔린다는 세태도 그렇다. 우리는 혹시 있지도 않
은 귀신에 홀려, 누군가 만들어 낸 귀신에 홀려 이렇게 광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몇백만 원 한다는 핸드백을 그대로 위조하여 만들어 낸 사람이 붙잡혔다.
그 사람은 한 개에 삼천 원씩 받고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품을 만든 회사도 그 모조품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조금 유쾌했다. 때로는 귀신에 홀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귀신이 곡할 노릇도’ 우리가 사는 세
상에는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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