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

세르지오 1세

교황

세르지오 1세

(Sergius I)

세르기예프 · 세르기오 · 세르기우스 · 세르지우스 · 세르게이

9월 8일🕰 +701년

성 세르기우스(또는 세르지오)는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온 시리아 가문 출신으로 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의 팔레르모(Palermo)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아마도 이슬람의 침략을 피해 이주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교황 아데오다토 2세(Adeodatus II, +676년) 때 로마에 와서 교육을 받고 사제품을 받은 후 퀴리날레(Quirinale) 언덕에 있는 산타 수산나(Santa Susanna) 성당의 명의(名義) 사제로 임명되었다.

그는 687년 12월 15일에 교황 코논(Conon)을 계승하여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교황 코논이 687년 9월 21일 사망한 후 교황직을 두고 대부제 파스칼리스(Paschalis)와 수석 사제 테오도루스(Theodorus)를 지지하는 무리가 충돌하며 두 명의 대립교황이 생겼다.

이런 분쟁 속에서 로마의 관리와 군인과 성직자들이 팔라티노(Palatino) 궁전에서 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성 세르지오를 후임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성 세르지오 1세는 서방에서 로마의 권위를 확고히 세운 능력 있고 활동적인 교황이었다.

라벤나(Ravenna)의 다미아누스(Damianus) 주교가 로마에 와서 축성을 받았는데, 이는 라벤나의 자치권 종식 이후 처음 이루어진 전례였다.

그리고 영국 교회에 관심이 컸던 그는 689년 4월 10일, 로마로 순례를 온 젊고 강력한 웨식스(Wessex) 왕국의 성 체드왈라(Caedwalla, 4월 20일) 왕에게 세례를 주었다.

또한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인 성 베르트발트(Berthwald, 1월 9일)에게 팔리움(Pallium)을 수여하고, 700년경에 성 빌프리도(Wilfridus, 4월 24일)를 요크(York)의 주교로 복직시킬 것을 명령하였다. 693년에는 성 빌리브로르도(Willibrordus, 11월 7일)에게 프리지아인(Frisians)에 대한 선교를 맡겼고, 695년에 그를 프리슬란트(Friesland)의 대주교로 임명하며 팔리움을 수여했다.

교황 성 세르지오 1세의 재위 기간은 비잔티움 제국과의 갈등이 다시 불거진 시기였다.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2세 황제(685~695년, 705년~711년 재위)는 교황의 동의도 없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궁전의 커다란 원형 홀(Trullus)에서 개최한 제2차 트룰라눔(Trullanum) 공의회(또는 제5차 · 6차 퀴니섹스툼[Quinisextum] 공의회)의 결정 사항을 승인하라고 요구했으나 교황은 이에 단호히 저항하였다.

이 공의회는 서방을 초대하지 않고 동방 주교들만 소집해 이루어진 회의로 692년에 102조항의 규율과 예식 규정을 반포했다.

그런데 그 결정 사항들은 서방의 교회법을 무시한 것이 많았다.

만일 교황이 이 결정에 서명한다면 서방의 교회법이나 관습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가 로마와 대등한 지위를 갖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교황청 소속 성직자들의 서명을 강요하고 교황의 서명란만 비워서 로마에 보냈다.

하지만 교황은 서명을 단호히 거부하고 결정 사항들이 발표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유스티니아누스 2세 황제는 무력을 사용하기로 하고, 친위대 장군인 자카리아스(Zacharias)를 로마로 보내 교황의 서명을 받아 오거나 체포해서 콘스탄티노플로 압송해 오도록 했다.

하지만 라벤나와 다른 지역의 시민군들이 교황을 보호하기 위해 로마로 모였고, 로마의 시민들이 단결하여 황제의 음모를 저지하고 자카리아스를 쫓아냈다.

황제의 굴욕적인 패배였으나 과도한 세금과 가혹한 통치로 미움을 사서 일어난 반란으로 695년 말 크림반도로 유배되어 복수의 기회도 얻지 못했다.

이로써 로마는 교황의 도시가 되었고, 교황의 영적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교황 성 세르지오 1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 성 바오로 대성당, 그리고 성녀 수산나 성당을 비롯한 로마의 여러 ​성당을 복원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688년 6월 8일, 교황 성 대 레오 1세(Leo I Magnus, 11월 10일)의 유해를 눈에 잘 띄지 않던 안치소에서 성당 내부에 화려하게 장식한 무덤을 만들어 안치한 후 대중에게 공개하였다.

또 뛰어난 성악가이자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701년에 미사 중에 ‘하느님의 어린 양’(아뉴스 데이, Agnus Dei)을 노래하도록 했다.

성모 마리아의 주요 축일에는 장엄 행렬을 거행하고 십자가 현양 축일을 처음 도입한 교황으로도 알려졌다.

그는 701년 9월 8일(또는 9일) 선종하여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9일 목록에서 로마에 성 세르지오 교황이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8일 목록으로 옮겨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시리아 출신의 교황 성 세르지오 1세가 묻혔는데, 그는 색슨족과 프리지아족의 복음화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고, 수많은 논쟁과 불화를 해결했으며, 잘못된 것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할 정도였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1건)
  • 존 노먼 데이비슨 켈리 / 마이클 월시 저, 변우찬 역, 옥스퍼드 교황 사전 - 세르지오 1세, 왜관읍(분도출판사), 2014년, 143-145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