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사이스(concise)를 가지고 미사를?

정지성(빈첸시오)·2005. 8. 25. 오후 2:33:12
 콘사이스(concise)를 가지고 미사를?


보통 영한사전의 육분의 일 정도인 콘사이스(concise)를 애용하던 고교시절의 일입니다.

콘사이스=사전으로 알고 있다가 형한테 꿀밤도 맞았고, 한장씩 뜯어서 외우곤 씹어 없애는 지독한 공부벌레 녀석도 있었습니다. 얄팍하고 손에 탁 들어오는 콘사이스는 단어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 후로도 습관이 돼서 꽤나 오랫동안 두터운 사전을 제쳐놓고 이놈을 끼고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대표적인 뜻만 달랑 두서너 개 적어놓은 이 콘사이스에 의존하다보니 영어 단어의 깊은 뜻, 다른 뜻을 몰라 지금까지도 ‘이 단어에 이런 뜻도 있었나’하는 황당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최소한 영어 하나만이라도 능숙하게 못하면 사회생활에 지장이 많은 국제화 시대가 왔습니다. ‘컴맹’은 못 벗어나도 ‘영맹’까지 되면 태어날 손주 세대와 단절될까봐 아직도 사전을 옆에 두고는 있지만, 이런 콘사이스 후유증에서 완치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랜다고 감히 ‘Bible 콘사이스’에 대한 걱정을 해봅니다. 한 달분의 전례말씀과 해설이 수록된 ‘매일미사’를 들고 미사 집전을 하시는 신부님 모습을 뵙고는 경망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 제 유별난 경험과 감각 때문일까요.

 

“매일미사”가 그날의 독서와 복음말씀을 일깨워주고 뜻을 풀이해주는 좋은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고, 또 ‘공부 안 하기로 죄명난’ 우리 가톨릭 신자들을 그나마 공부로 이끈다고는 해도 미사에 참례하는 대다수가 달랑 “매일미사 책”을고 있는 모습은 흡사 교실에서 교과서를 저만치쳐놓고 참고서를 들고 수업하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성서읽기 모임이나 미사 전 성서봉독을 통해서 성서를 손에서 놓지 않도록 이끌고는 있지만, 이래가지곤 사제나 신자 모두 너무 편의성에 매달린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면 차츰 두터운 성서를 멀리하게 되고 끝내는 ‘콘사이스 증후군’에 많은 신자들이 빠져들까 염려됩니다. 단락에 대한 설명에 푹 빠져  성서 전체의 깊은 느낌을 잊게 된다면 결국은 잃는 것이 엄청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새로 영세한 초심(初心)의 신자들에겐 긴세월이 지난 후 어떤 영향이 올지 정말 궁금합니다. 본당을 떠나 드리게 되는 미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사용하더라도 본당의 거룩한 제대에서만은 이 책자를 안 보이게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자들에게도 강론을 통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에 ‘참고서’로 쓰도록 이끌고 납득시키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성서가 아닌 성서 해설서, 복음 전체가 아닌 복음 모음집을 달랑 들고 미사에 임하는 모습과 개신교의 많은 신자들이 성서를 정성스레 껴안고 다니는 모습이 대비되지 않습니까? 한 달 후엔 어김없이 재활용 폐지더미로 던져질 ‘책자’를 붙들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모습을 한번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이 글로서 더 좋은 의견과 반론(反論)이 나와주길  기대해 봅니다.

 

<정지성․빈첸시오/서울교구 상도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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