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호(號)의 선장은 누구일까?

신석관(토마)·2005. 8. 24. 오후 8:48:19
 

지구호(號)의 선장은 누구일까?


고약스런 내 친구 하나가 있습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왕자병끼가 있는 이 녀석이 2년 전  가톨릭교리를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설익은 개신교신자였는데 성모병원에 친구 문상을 다녀와서 느닷없이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아흔에 가까운 노모를 모시고 있는 탓에, 장례식이 몹시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나한테 이것저것 묻더니만 아무래도 하나뿐인 아들인 제가 영세를 해서 가톨릭 장으로 모셔야겠다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세례식을 불과 이삼 일 앞두고 영세 안 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입에서는

도저히 ‘하느님’이나 ‘주님’이라는 말이 안 나와서 본당 신부께 교육은 다 마친 것으로 해주고 세례만 다음에 줄 수 없느냐고 얘기했다가 호되게 핀잔을 받고는 삐친 것입니다. 그리고는 무슨 사찰에서 하는 한 달짜리 불교 공부도 해본다는 둥 종교 쇼핑 하듯이 무교(無敎)로 일 년 반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놈을 제가 고약하다고 하는 건, 제가 하는 노숙자 급식봉사를 그렇게 칭찬해대면서도 월 만원 씩이라도 참여하라는 내 말에 꿈쩍도 안 하는 놈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있는 자식을 보기 위해 두 부부가 일 년에 두세 번씩 비행기 값만도 천만 원을 써대는 놈이 연 12만원을 외면하니 제가 욕을 안 할 수가 있습니까?

 

지난 4월 이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느닷없이 ‘너는 교황이 죽었는데 로마에 안가냐?’ 였습니다. 그리고는 콘클라베가 어떠니, 흰 연기,  검은 연기가 어떠니, 만장일치가 어떠니 하며 관심 아닌 관심을 표해대는 것이었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돌아가신 교황, 새로 될 교황이 어떤 방향으로 전세계 가톨릭 신자를 이끌어 가느냐는 것은 안중에도 없던 것입니다. 동물을 상대로 하는 실험 성공에 이어 인간을 상대로 한 난치병 환자의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함으로써 생명윤리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국제정치, 종교간 갈등과 같은 큰 파고를 타고 넘어야 할 이 지구호의 선장인 가톨릭의 수장首長, 교황의 교체 같은 문제는 아마 실감이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도는 빛의 속도로 몇 만 년을 가도 끝이 없는 이 광대한 우주에서 오직 하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작품인 이 동그랗고 예쁜, 온갖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지구를 이끌고 갈 정신적 지도자로 과연 교황에 필적할만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수퍼파워 미국의 대통령? 지식인 그룹? 경제학자? 사상가? 과학자 그룹?

 

예의도 안 갖춘 이 녀석의 생뚱맞은 질문 아닌 질문이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의 죽음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황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으뜸가는 제자로서 지구를 영원히 살릴 정신적 지도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돌아가신 교황이 냉전의 대립을 깨고 평화를 이끌어 내셨듯이 새로 되신 베네딕도16세께서 냉전의 찌꺼기인 우리 한반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으로 믿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석관 * 토마/서울교구 상도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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