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의 집
어린 시절, 주일은 으레 가족이 함께 공소예절에 참례하러 가는 날이었다.
회장님 댁에서 함께 기도를 드린 후 점심을 먹고 옹기가마 주변 마당에서 뛰어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세상의 것과는 다른 아주 편안한 추억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서울로 이사와 보니 주일미사 시간이 초등부, 중고등부, 성인으로 분리되어 있어,
1년에 한 번 주일미사를 같이 드리기도 힘들게 되어있었다. 우리 집도 어머님께서 여성총구역장, 사목위원 등으로 활동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주일날도 가족이 함께 식사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 당시 어린 나의 눈에는 엄마가 성당 식구들끼리 잔치나 행사를 하느라 바쁜 것처럼 보였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느라 바쁜 것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크면 절대 주말에 가족을 버리고 본당활동을 하진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 삶의 역사 안에서 살아계신 구원의 하느님을 체험한 후 나도 엄마처럼 집 밖을 나가 복음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교정사목 봉사로 책임을 맡다보니 본당에서는 주일미사를 드리기도 힘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도 덩달아 본당공동체와 멀어져 주일미사에만 나가게 되고, 아이들은 나처럼 성당을 편안한 “우리 아버지 집”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제서야 내가 교회의 일을 곧 ‘나의 일’이라고 여기고 교회를 ‘우리 집’처럼 편안히 여기는 것은 내 신앙체험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내 어머니를 통해 교회공동체 생활을 익혔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 본당에서 3학년 이상의 주일학교를 운영을 스카웃으로 하였다. 우리 부부는 큰아들과 함께 스카웃을 한 경험도 있고 해서 스카웃 대장에 지원하였다. 덕분에 우리 집은 토요일이 되면 고등학생인 둘째만 빼고 여섯 식구가 함께 성당에 간다. 스카웃을 통한 주일학교 생활을 통해 하느님만이 만들어 주실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가족이 함께 공유하는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우리아이들도 어른이 되어서 교회공동체를 부모와 함께 사랑을 나눈 추억이 깃든 “우리 아버지의 집”으로 여길 수 있고, 교회의 아름다운 전례 안에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공동체를 자기들만의 잔치 터가 아니라 세상의 빛과 희망의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는 후배가 되길 또한 소망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혼자의 신앙고백으로서의 선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우리가정에 파견하신 것처럼 우리 가정공동체가 교회공동체를 통해 받은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도록 기꺼이 나를 세상 속으로 파견하는 날이 오길 기다려 본다.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성령님,
저희 가정을 새롭게 빚어주시어 혼인성사의 표징을 통해 당신을 증거 하게 하시고 자녀들에게는 신앙을 유산으로 상속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유수선 * 수산나 / 서울교구 반포4동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