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동체와 단체는 분명히 다르다
1992년 전부터 시작된 소공동체사목이 이젠 대부분의 교구에서 수용되고 있다.
그렇다고 일선 사목자들의 반응이 적극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실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절박함과 함께 꼭 해야 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소공동체사목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먼저 사목자들의 인식이 중요하다. 복음화에 대한 바른 이해와 작금의 여러 정황을 미루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그 총체적 난맥상을 푸는 해법으로 소공동체사목이라는 새로운 사목형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국교회는 성장 추세가 둔화되었고 전부터 지적되었던 내적 성숙, 양과 질적 문제 모두가 걸려 있다. 신자 중 절반 정도는 확실히 냉담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교회가 매력을 잃은 지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신앙과 삶의 분리현상은 우리 교회의 고질적인 병폐다. 사실 열심한 신자라 하지만 그들 삶에 복음적인 가치관이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목자의 대처 역시 총체적인 접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사목형태가 지나치게 본당 내적인 데에 매여 있었다. 사목자는 본당사목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단체들을 조직하여 신자들을 가입하게 했다. 소공동체를 단체와 혼동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소공동체에 대한 편견 없는 올바른 이해가 중요하다. 사실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사람은 전체 신자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한 사람이 이 단체 저 단체 겹치기로 가입 활동하는 것이다. 지나친 본당 중심 사목은 가족들이 만나는 시간을 빼앗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단체는 주어진 카리스마를 수행해서 본당사목에 활력을 더해주지만 소공동체는 신앙인으로서 품성을 닦는다. 소공동체는 복음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도록 하고, 단체는 본당 내 어떤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테면 전자는 인성을 닦지만 후자는 전문 인력을 키워낸다. 소공동체사목은 한마디로 훌륭한 신앙인을 길러내는 학교다. 신자다운 신자로 양성하는 것이 급선무이지 않는가.
이래저래소공동체사목의 성공의 열쇠는 사목자들에게 달려있다. 모든 이를 아우르는 폭넓은 교회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대한 목자적 사랑, 말씀을 성사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말씀에 대한 이해, 외적인 틀로서 매 주 한 번씩 가족, 적어도 부부가 만나는 것이다. 백성들의 삶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 지역사회와 함께 숨을 고르고 지역사회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다. 요한 23세 교황은 본당은 동네의 샘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만 하면 삶 속에서 복음이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사목자의 기쁨이다. 비록 작게 보일지 몰라도 의미 있는 결실이다. 복음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이사58,8)
<서춘배 * 아우구스티노 신부 / 의정부교구 구리성당 주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