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의 은총을 목말라 하는 미사쟁이가
우리는 병을 고치고 큰 수술을 하는 의사들을 보고는 얼핏 ‘아, 의사들은 남의 병을 저렇듯 잘 고치고 수술도 척척해 내니 자기나 가족들은 오죽이나 잘 돌보랴’하는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기실 의사만큼 자기 몸의 병에 대해 무지(無知)한 사람도 없는가 봅니다. 매일 남의 아픈 구석 들여다보다가 정작 자기 몸에 치명적인 것이 와서야 아차! 하는 경우를 저는 여럿 보았습니다.
사회적 명망도 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도 받는 의사 한 분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분이 어느 날 자신이 매우 위중한 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고 이를 평소 친분이 두터운 신부님께 알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신부님께서 별 말씀 없이 선생님의 집에서 조촐한 미사를 봉헌해 주시더랍니다. 말하자면 용기를 내라는 ‘위로 미사’였겠죠. 그 때 그분은 미사를 통하여 큰 믿음을 깨닫는 은총을 입었다며, 만일 신부님께서 미사 대신 인간적 위로를 하셨다면 그렇듯 큰 은총을 얻지 못하였을 거라고 고백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도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지 25년이 되었습니다. 매일미사에 빠진 기억도 별로 없고 남들 보기에도 열심히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 볼 때 과연 얼마나 미사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드렸는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흡사 숙제를 하듯 타성에 젖어 미사를 봉헌하는 내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란 때도 있었습니다. 더욱이 성숙한 자식들이 냉담중인데도 언젠가 돌아오겠지 하는 맘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에서 기계적인 ‘미사쟁이’라는 느낌을 가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것이 비단 저의 부족한 믿음에서만 비롯된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미사라는 의식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새로운 영적 양식을 얻어 그나마 작고 보잘것없는 믿음이라도 키워나갈 수 있다고 볼 때, 신앙생활에서 미사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한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신앙인의 의무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전통적 의무만을 내세워서야 참된 미사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의무적으로든 자발적으로든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목적 배려를 동원하고 확대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어 가는 요즘 이제 토요특전미사는 그 의미를 상실한 듯합니다. 이에 대한 사목적 대안을 제시하고 신자들을 독려하며 신자들에게 다가가는 교회, 이러한 교회를 위해서 사제들은 미소와 눈짓 그리고 따스한 한 마디로 조금 더, 지금보다 더 신자들에게 다가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자 개개인의 성찰과 반성이 사제의 노력과 이해를 만나면 더욱 뜨거운 신앙생활을 우리 모두에게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중한 병에 마주친 신자 한 명을 위하여 청하지 않음에도 조촐하게 미사를 봉헌해 주시는 따뜻한 사제의 마음씨를 모두가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지연자 ․ 베로니카/서울교구한강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