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많이 바쁘신가봐요?
그 아일랜드 신부님은 주일이면 늦은 시간에 술에 만취되셔서 성당이 저만치 보이는 골목어귀까지 와서는 길에서 주저앉아 잠이 들어버리곤 했습니다. 저기가 내 집이구나! 하고 안심하는 순간 주일을 바쁘게 보낸 피로가 술기운과 함께 몰아친 거죠. 그래서 본당의 몇몇 신자들은 순번을 매겨 매 주일 신부님을 침실까지 모셔다 주무시는 걸 확인하는 것이 아주 큰 임무이기도 했습니다. 여름, 겨울 가리지 않고 그러니 동사(凍死)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그래도 체구가 110킬로그램은 나갈만한 이 거구의 신부님을 신자들은 무척 사랑했습니다. 왜냐고요? 불과 몇 시간 전에 길에서 “옜다 모르겠다” 했던 분이 아무 일 없은 듯이 새벽같이 제단을 지키고 계시니까요.
다행인 건 한 주일에 꼭 한 번만 이렇게 된통 술을 드신다는 겁니다. 매일 조금씩 찔끔 하는 것보단 알코올 중독 가능성이 적다고 하니, 그 신부님은 벌써 25․6년 전에 이런 식의 주법을 체득하셨나 봅니다.
아무튼 성당이란 곳을 잘 모르던 나에게 들려오던 이 신부님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왠지 그때 그 성당이 꽤나 시끌벅적 하고 꽤 자주 꽃장수들이 정문에 진을 치곤 했던 아스름한 기억 때문이 아니었나 합니다.
세례를 받은 후, 몇 년 전에 교우들과 여행길에 강원도 조그만 마을의 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직접 기타 반주를 하며 주일미사를 봉헌하더군요.
150여 명의 신자 가운데는 군인들도 20여 명 섞여 있는데 신자 하나 하나의 이름을 모두
짚어가며 드리는 미사가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미사여구의 깔끔한 강론 대신 가족과 함께하는 푸짐한 밥상 앞에서의 아버지 같은 사제의 모습에서 우리들도 여행중인 손님이란 걸 잠시 잊었습니다. 김이 무럭무럭 솟는 청국장 속에서 고기 한점씩을 꺼내 아들․딸의 밥 위에 얹어주시는 아버지 같은 느낌의 사제를 이해하시겠습니까.
대문을 활짝 열고 밖의 사람들을 뜰 안으로 불러들이는 본당, 세례식을 위해 온 신자가 들뜬 기분으로 즐겁게 준비하는 본당, 신자와 사제가 일치해서 세례식을 총 쏘고 사열하는 군대식 의식이 아닌 잔치로 흥을 돋굴 줄 아는 본당을 신자라면 누구나 원합니다. 첫영성체 때에 빨강 가운을 입고 촛불을 들고 제대 앞으로 입장하는 어린이들을 보며 부모가 아니라도 모두 박수로 환영하고 함께 기뻐하는 그런 미사가 있는 본당을 신자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신부님들이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아침 저녁의 미사를 줄여 신자들을 게으르게 하고, 성당을 써늘하게 하고, 미사를 의식으로만 만들고, 세례식이나 첫영성체를 통과 의례쯤으로 여기고, 그래서인지 그 시절에 뵈었던 신부님의 모습이 많이 그립습니다.
<홍성희*가브리엘 / 서울교구 상도동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