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줄기세포 배양” 알고 고민합시다
나무엔 뿌리․줄기․가지․잎 그리고 열매가 있죠. 경기도 가평의 잣나무숲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십 미터는 족히 되는 쪼-옥 곧은 “줄기”로부터 가지가 뻗고 거기서 또 많은 잔가지가 갈려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린 묘목을 보면 가지는 별로 없이 줄기 하나만 삐죽 있지 않습니까? 큰 나무의 시작도 이처럼 작은 줄기하나로 시작하죠. 그래서 묘목을 고를 땐 같은 값이면 굵은 줄기를 고르게 되죠.
사람에게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묘목의 줄기 같은 역할을 하는 그 ‘무엇’을 만들어 내는 세포가 따로 있습니다. 줄기만 만들어 낸다고 해서 ‘줄기세포’라고 하죠. 이 줄기세포를 인공적으로 얻고자 할 때, 다 자란 몸(成体)에서 직접 얻는 방법과, 배아(胚芽)에서 얻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을 놓고 학계, 종교계가 논란이 분분합니다.
‘배아’란 무엇일까요.
물은 곡식 또는 열매를 싹틔우면 묘목이 되죠. 그것은 이미 그 자체에 암․수의 결합이 열매 시절에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람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야만 수정란이 형성되며, 이때부터 세포분열이 시작되어 자궁내막에 착상하기까지 4일 정도 걸립니다. 이 기간에 단 하나였던 수정란은 수백 개의 세포집단으로 분열함과 동시에 앞으로 태아가 가져야 할 200여개의 기관으로 자라날 세포를 준비합니다
자궁내막에 착상되기 전에 내부 세포 덩어리와 외 부를 둘러싸는 영양세포로 구성되는데 이를 배포(blastcyst) 상태라고 하며, 배포가 256개의 세포 상태가 될 때, 자궁내막을 파고드는 착상이 일어납니다(수정 후 약 7일). 그리고는 영양세포가 변화, 성숙하여 자궁내막을 지속적으로 파고들어 모체의 자궁내막 내의 모세혈관 까지 이르러 영양분을 공급 받는 조직적 성숙을 일으킵니다. 이런 과정에서 수정란이 약 2주일 지났을 때를 “배아”라고 부릅니다. 식물의 곡식이나 열매에 해당하고 나무로 치면 아주 어린 묘목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세상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때’를 엄마 몸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린 나무’가 이미 된 것입니다.
정성들여 심은 묘목을 자르면 어떻게 되죠? 우람한 큰 나무를 볼 수가 없게 되죠. 마찬가지로 배아를 죽인다면……?
이 생명의 시작인 귀중한 배아에 바야흐로 ‘줄기세포’가 자리잡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되돌리면, 난자와 정자에는 엄마 ․아빠의 성질, 모습, 체형, 질병 등 유전되는
모든 요소(유전자)가 담겨있습니다. 이 유전자를 담고 있는 그릇을 바로 핵(核)이라고 하죠.
세포의 중심인 것입니다. 사물의 주요한 포인트를 우리말로 ‘핵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핵(核)끼리 만나 타협을 하다 보니 이리 뜯어보면 엄마를 닮기도 하고, 저리 보면 아빠를 닮기도 한 아기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여성 몸에서 ‘얻어진’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면 그 여성의 ‘유전자’는 이후 나타나지 않겠죠? 여기에 심장병이 있는 환자 A씨(氏)의 몸에서 얻은 세포핵을 심으면, 그리고 그것을 잘 키우기만 하면 그 환자의 유전자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A씨 배아’를 얻게 되겠죠. - 상상하기 싫은 이야기이지만, 이 배아를 모체 즉 여성의 몸에서,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인공적으로 키워낸다면, A씨만을 100% 꼭 닮은 ‘복제된 A씨’가 만들어 질 수도 있습니다. 마치 복제양 ‘돌리’를 얻을 때와 같은 원리이죠.
심각한 A씨의 심장병을 고치기 위해선 새로운 강한 심장으로 자라줄 수 있는 세포, 즉 ‘심장줄기’ 세포가 필요합니다. 말은 줄기세포이지만, 가지인 셈이죠. 이 ‘심장줄기’ 세포를 얻기 위해선 줄기세포 전체(줄기세포주)를 키워야(培養) 하는데 그러자면 그것을 배아로부터 떼어내야(分離) 하고, 바로 이때 배아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죽음을 맞이하는 배아는 비록 여성의 몸, 즉 자궁(子宮)이 아닌 다른 인공 장치에서 컸을지라도 그 자체로 이미 ‘어린 나무’인 것입니다. 비록 시간이 짧아 태아로써의 완전한 모습을 육안으로 보여주지는 못했지만요.
이 ‘A씨 배아’에선 오직 심장으로 자라주는 특별한 세포만 필요할 뿐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간, 콩팥, 눈, 뇌 등으로 자라는 세포를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수는 없냐고요? 안되죠. 내 몸에 남의 살을 떼어다 이식해 보세요. 큰일 나죠. 내 몸 가운데서도 종아리에 필요한 근육이 없어 잘 걷지 못할 때 허벅지살을 떼어다 옮겨 심을 수는 있을지 모르나, 야들야들하고 아주 특별한 심장을 고치기 위해 허벅지 살을 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홍길동 살을 떼어 임꺽정에 쓸 수는 없는 거죠.
어려운 학술용어를 쓰지 않고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을 함께 찾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첫째는, 어린나무에 해당하는 배아를 생명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배아에서 즉시 눈, 코, 입, 귀 등이 생기고 심지어 눈꺼풀도 2~3주면 볼 수 있으며, 6~7주 후에는 심장도 볼 수 있습니다. 형태는 안 갖추고 있으나 태아(胎兒)로 자라는 바로 직전의 단계이기 때문에 이는 엄연히 생명임은 아무도 부인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단계를 거쳐 이 세상에 나왔고 우리의 예쁜 자녀들도 이 단계를 거쳤습니다.
둘째, 이 배아가 여성의 자궁에서 생겨나지 않고 밖에서 컸다고 해서 자궁 속의 배아, 즉 정상적인 태아와 같지 않다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린나무 즉 묘목이 묘판(苗板) 즉 못자리에서 길러졌느냐 험한 바위산에서 길러졌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셋째, 여성의 몸에서 한 달에 한 개씩 생산되는 ‘난자’를 얻는 방법입니다. 수컷의 몸에서 나오는 정자야 1그램에 수 억 개씩 들어 있으니 그렇다 치고, 이 난자는 인구(人口)를 조절해주는 하느님의 섭리가 담겨진 지혜의 씨앗입니다. 일생을 통해 일정기간만 생산이 되며, 임신기간에는 생산이 중단되는, 그야말로 신비 그 자체입니다. 죽을 때 까지 무수히 분비되는 남성의 정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비’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상품화(商品化)되어 팔고 사는 대상이 된다거나,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약물(藥物) 등의 주입으로 대량으로 생산되어 실험목적으로 쓰일 때 하느님이 정하신 인간의 존엄성은 그 시작부터 파괴되고 있는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이 난자를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이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부진한 요인 중 하나로 되어 있음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넷째, 예를 들어 A씨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켜 복제(復製)된 A씨가 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복제 양(羊) 돌리는 평균 4배(倍) 이상 일찍 늙고 허약한 체질에 시달리다 복제한 지 6년 반 만에 안락사 시켰습니다. 그런 인간이 태어난다면 ……?
다섯째, 한 사람의 질병을 고치기 위하여 한 생명(배아)을 죽이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에 대한 답은 ‘배아줄기 세포 배양’이 아닌 ‘성체줄기세포배양’이 대안(代案)으로 학계에서 이미 제시되어 있습니다.
성체줄기세포 배양이란 글자 그대로 성인이 된 사람의 몸에서 줄기세포로 자랄 수 있는 세포를 꺼내어 여기에 꼭 같이 A씨의 세포핵을 끼워 넣어 이것을 길러서 A씨의 심장치료에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성인의 몸에서 줄기세포를 얻으려면 골수, 조혈모(造血母)세포, 산후(産後)태반 등에서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생명이 시작되는 배아, 즉 태아의 전 단계에서와 같이 완전한 생명체로부터 나오는 온갖 줄기세포를 모두 얻을 수 없다는 제약은 있지만, 이미 주요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얻고 있다는 의학계의 연구 성과가 속속 알려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죽여 가면서까지 줄기세포를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윤리(倫理)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고, 가톨릭은 이 방법을 통하여 에이즈와 같은 난치병을 잡음으로써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구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 정녕 보잘 것 없는 인간의 ‘겸허함’, 그러나 그 인간에게 탐구와 도전이라는 속성을 함께 넣어 주셨으니 어느 것이 하느님의 참 뜻이신 가를 우리는 지금 다투고 있습니다.
우라늄, 플루토늄 등 핵물질로 가공할 만한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스스로 덫에 걸린 인류가 한편으로는 그것으로 청정(淸淨)의 전기를 생산해 내고 온갖 과학문명의 편의를 누리는 이 아이러니(irony)를 배아줄기세포배양 문제에서 꼭 같이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것은, 배아줄기세포 문제는 핵(核)보다 훨씬 근본적인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학(科學)의 문제를 껑충 뛰어 넘는 생명(生命)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고귀함을 우리 모두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모두 먹고 마시고 살아 숨쉬는 것 때문에만이 생명이 고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이십여 명이나 죽인 흉악한 살인범을 그래도 죽이기까지는 말자고 하는 외침이 우리사회 한켠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생명을 내신 창조주만이 생명을 거둬들일 수 있다는 소박한 진리를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필연적인 육체의 소멸’을 죽음이란 형태로 주셨습니다. 인간에게 뿐아니라 이 세상 모든 생명체에 ‘필연적인 죽음’을 주셨습니다. 언젠가는 ‘죽어 없어질’ 생명이기 때문에 그래서 생명은 고귀한 것입니다. 심장을 바꾸고, 폐를 바꾸고, 간을 바꾸어가며 무한히 생명을 연장한다면 그 고귀함은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살아 있는 동안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까지도 궁극적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일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꾀’ 많은 인간이기에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이 노력조차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한다면, 유독 배아줄기세포연구에만 거대한 지원과 혜택과 관심이 주어지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정부와 학계는 배아줄기 세포연구에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정하고, 관리와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그 대안(代案)인 ‘성체줄기세포’ 연구에도 똑같은 지원과 관심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으론 끝없이 생명의 윤리, 창조의 윤리, 과학의 윤리를 경제의 실리(實利)와 접목시키는 토론 아닌 토의를 계속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중세(中世)의 암흑기를 거치며 꾸준히 발전해 온 온갖 과학의 성과를 몇 백 년 동안 부인(否認)해 온 우리 인류의 우매함을 겸허하게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창조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많은 질병으로부터 인류가 치유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생각하며, 인간의 위대함도 예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열린 자세도 함께 요구 됩니다.
하느님,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죽어 없어질 존재라는 것이 얼마나 크신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게 하소서.
하느님, 필연적으로 찾아올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참된 하느님의 뜻인지 저희가 일찍 깨달아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 모든 인간의 ‘죄’가 삶이 아닌 죽음에 바탕을 둔 지혜로 승화되게 하소서. 아멘.
<정원교․도미노 / 서울교구 수유동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