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북한

함세웅 신부·2005. 8. 24. 오후 8:42:48
 교황과 북한


요한바오로 2세의 선종과 장례미사에 대해 각 방송과 신문은 앞다투어 크게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우선 우리 교우들은 기본적으로 교황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있기에 이러한 보도에 더욱 고무되어 이것이 선교에 큰 보탬이 되고 실제로 이를 계기로 많은 이들이 성당을 찾아오고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교황의 선종 보도에 대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로마제국식의 장례, 중세봉건 때의 의식을 치루는 것이냐 하면서 매우 못마땅해 하고, 아예 텔레비전을 끄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는 적절하지 못한 언쟁도 다소 있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많은 이들은 그래도 교황의 대단함과 2000년 가톨릭의 저력을 볼 수 있다면서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 했습니다.

 

그런데 교황 장례미사의 전 과정을 TV로 지켜본 70대 어느 여교우는 사제인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신심이 부족한 탓인지는 몰라도 장례식을 보면서 느낀 점은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예수님의 죽음과 교황님의 장례식은 뭔가 좀 어울리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장엄하고 굉장하고 대단했지만 순간 ‘이것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스쳤거든요. 제가 좀 부족하고 몰라서 그런 것 같아요. 이것도 죄인가요?”

 

저는 다소 의아했습니다. 그분의 신분과 연령,  환경과 배경을 보아서는 이런 생각을 할 분이 아니었는데 교황의 장례식과 십자가의 예수님, 그것도 가시관의 예수님과 연계했다니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 숱한 언론인 중, 그 숱한 가톨릭인 중 그리고 신학자 중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은 것을 평범한 이 여교우가 지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신학, 민중신학의 바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주위에 계신 분들과 함께 기도하는 자세로 이러한 내용을 대화로 나누실 수도 있겠지요. 건강한 생각은 공유할 수 있습니다”하고 답했습니다.

 

아마 이런 생각들을 수집하면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 어쨌든 요한바오로 2세는 1984년, 1989년 두 번 한국을 방문하셨기에 그 일화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고 보도되었기에 더욱 친근함을 느낍니다.

 

저는 이 기회에 지금은 시리아로 전임된 전 주한 교황대사 모란디니 대주교의 말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이분은 늘 우리 사제들을 만날 때마다 교황님의 뜻이라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교황님은 참으로 한국을 사랑하십니다. 아니, 한국이 일치와 평화를 이루기를 바라십니다. 더구나 북한의 굶주린 동포들을 꼭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남한 정부의 실정법이 금하더라도 그 법을 넘어서서 북한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복음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교황님의 이러한 분명한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말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이어 교황대사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남북이 손잡고 대화해야 합니다. 누가 남북의 일치와 통일을 원합니까? 미국입니까? 일본입니까? 또는 중국과 러시아가 원합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이른바 6자회담의 구성국인 강대국들 중 그 어느 나라도 결코 남북의 일치와 평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려워하고 방해를 합니다. 일본이야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미국, 러시아도 원치 않습니다.

 

때문에 여러분 스스로 이 난관을 극복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손잡고 대화하고 굶주린 북한 동포를 무조건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는 외교관이기 이전에 한 신앙인, 사목자로서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교황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말에 힘을 얻고 매우 기뻤습니다. 그리고 한편 부끄러웠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지도자 중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함세웅 * 아우구스띠노 / 서울교구 제기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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