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이와 개똥쇠의 지역감정

한재희(비오)·2005. 10. 27. 오후 5:50:26
 

문둥이와 개똥쇠의 지역감정


“손이 안으로 굽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와 뜻이 맞고 가까운 사람 편을 들게 마련이라는 속담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웃 간에, 혹은 친척들 사이에 조그만 다툼이라도 생기면 평소 자기와 가깝고 호감이 가던 사람의 역성을 들어주는 것이 우리네 ‘정’입니다. 생활 속에서 오는 ‘다툼’이라는 것이 대부분 똑부러지게 “이이가 옳고 저이는 그르다”고 칼로 무 자르듯이 판정내릴 수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보니 술한잔으로 화해하기도 하고 끝내는 법정으로 옮겨 시시비비를 가르기도 합니다. 법정으로 갈 경우, 각자 자기편을 증인으로 세워 재판을 유리하게 하고자 노력하죠. 소위 편가르기가 확연해지는 순간입니다.

 

이렇듯 ‘다툼’이 있어야만이 편가르기가 성립 됩니다. 스포츠를 보면 확실합니다. 상대를 누르고 이기는 것이 스포츠의 본질이라고 보면, 경기에서 편가르기는 너무나 당연합니다(여기에서 스포츠의 본질이 승리인가의 여부는 제쳐놓겠습니다).

그러나 ‘노래 부르기 대회’ 같은 오락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1․2등을 가리기는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서와 같은 승자와 패자라는 ‘다툼’은 없지 않습니까?

 

정치(政治)는 어떻습니까? 벌써 반세기 가까이 신물이 나도록 ‘지역감정’이라는 말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정치라는 것이 노름판, 술판, 싸움판 하듯이 ‘정치판’이란 오명(汚名)을 쓰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온갓 술수와 부정직의 ‘판’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감정’이 무슨 뜻입니까? 말은 고상하지만, ‘지역민 사이의 다툼’ 아니겠습니까? 왜 정치인, 정치하는 분이란 좋은 말을 놔두고 ‘정치하는 놈’이란 말을 쉽게쉽게 쓰는 그런 ‘놈’들 판에서, 유독 ‘지역민 사이의 다툼’이 그렇게도 심각하고 당장 해결해야 될 과제로 떠오르는지, 없어지지 않는 고질병으로 남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작 전라도민은 전라도민 대로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 사람대로 서로 ‘다툼’을 느끼지 않고, 일상 자기 말 그대로 사투리 쓰는 사람, 그쪽에 기반을 두고 살고 있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다만 오랫동안 같은 지역에 살면서 생각이 비슷한 사람에게  아무 탈 없이 표를 던져 뽑아주고 있는데 그것을 야단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지역감정’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정치쟁점(政治爭點)화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런 자연스런 감정이 없어지겠습니까? 또 없어져야만 좋은 것입니까? 없어져야 할 것은 오히려 이 현상을 문제 삼는 ‘정치하는 놈들’의 꾀와 술수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른 음흉한 뱃속입니다.

 

똘똘뭉쳐 힘을 과시하듯 “우리가 남이가!” 해봤자 그건 자기들끼리의 왔샤왔샤일 뿐이지 그렇다고 우르르 몰표가 몰리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은 성숙해 있습니다. 국민들, 아니 국민이라고 할 것 없이 일상(日常)을 사는 평범한 우리들은 ‘지역감정’을 잊고 삽니다.

 

‘경상도 문둥이들 때문에 죽을 맛이다’고 하는 전라도민도 없고, ‘전라도 개똥쇠 때문에 못 살겠다’는 경상도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엄연한 현실을 놓고도 계속 ‘지역감정’ 때문에 나라가 둘로 갈라진다고 법석을 떨어대는 일부 사람들의 마음보를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선거제도를 고쳐야 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얄팍하게 계산된 ‘정치술수’라는 비난을 면치못할 것입니다.

 

이제 ‘지역감정’을 부추겨 정권을 잡았던 사람들이 아물아물 기억에서, 현실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 말을 더 쓰지 않고, 오로지 나라 살리는 좋은 정책만을 갖고 대결한다면 현명한 우리 국민은 그것을 가려 선택할 터이고 그런 가운데 ‘감정’ 같은 삼류(三流) 테마는 더 이상 호응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먼 훗날  통일이 된 후에 “인구가 좀 많다고, 왜 남쪽 사람들만 정권을 쥐느냐”는 새로운 지역감정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통일 독일의 경우를 눈여겨 봐야겠습니다. 구(旧)동독에 기반을 둔 당도, 서독에 기반을 둔 당도 아닌 정책에 기반을 둔, 정당이 원(院)내 의석을 갈라 가졌습니다. 거기에도 물론 지역에 따른 ‘느낌’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쇼크’이며 이조차도 그 시대를 살았던 중․노년층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 곳에 우리 같은 지역감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자주 써가며 이용해먹는 정치꾼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고급 ‘정책 대결’이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죠. 냄비 같은 우리 성격엔 뜻뜨미지근한 이런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성에 차지 않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이런 안목과 의지를 갖고 국민을 설득하고 정치를 펴나간다면 ‘정치판’에서 ‘정치하는 놈들’ 소리도 점차 수그러들게 될 것입니다.<한재희 ․ 비오 / 서울교구 상도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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