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不動産)과 부동심(不動心)
부동산(不動産)과 부동심(不動心)
12년 전쯤 겪었던 일입니다. 방문객이 많지 않던 동남아(東南亞)의 오지(奧地)에 살고 있을 때 느닷없이 4-5명의 한국인이 사무실로 찾아 왔습니다.
사전 연락도 없었고, 외국어는 도통 맹탕인 이들 초로(初老)의 남자 분들이 1억원 쯤 들여 뭔가 해 볼 사업이 있나해서 이 나라를 찾았던 것이랍니다. 몇 십 년 전에 사둔 땅이 ‘개발’되면서 졸지에 땅부자가 된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잔뜩 거드름을 펴가며 서울의 요지(要地)에 땅이 3천평 쯤있는데 시가(時價) 700억쯤 나갈거라며, 그래서 그 중 얼마를 떼어내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겸 사업도 해볼까 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참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나같은 월급쟁이는 가소롭게 보였는지 말하는 투며 상스럽기가 그지 없었습니다.
수 년 후 이 사람이 삼각지 어느 허름한 사무실에서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없이 ‘채권장사’를 하고 있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물론 그 땅은 공터로 남아 있었다는데, 무거운 세금하며 자식들의 눈총하며, 주위의 쏙딱거리는 사람들의 유혹하며 얼마나 짐이 무거웠겠습니까. 결국 700억인가 900억인가는 손도 못 대보고 60을 갓 넘긴 나이에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나의 큰자형(姊兄)의 옛날 고향사람이라 우연히 듣게 된 후문(後聞)이었습니다. 세상 참 좁죠?
자, 이제 좀 속이 풀리셨습니까? 저도 솔직히 ‘남 잘되는 꼴 못봐주는’ 못된 시기심이 조금은 있어서 그것보다도 제가 겪은 아니꼬움 때문에 ‘고것 참 쌤통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우리 모두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이라는 내기판에서나 있을 이런 마음을 조금씩은 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상 이렇듯 ‘있어서’ 고민하는 사람이 이뿐이겠습니까. 이 사람의 경우 1억을 만들기 위해 빵조각 떼어내듯 몇 평만을 떼내서 돈으로 만들 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또 99억 있는 사람이 어떻게든지 남의 돈 1억을 빼앗아 100억 만들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뺏는다’는 게 뭣한 표현이지만 열심히 번다는 얘기는 결국 남의 주머니돈을 자기 계좌로 옮기는 경제활동을 잘 했다는 얘기겠죠. 바로 이런 우리의 욕심, 즉 ‘보이지 않는 조그만 손’ 때문에 우리의 경제가 발전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열심한 경제활동’이 땅과 아파트 등 부동산을 매개로 해서 일어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냐구요? 5억 나가는 50평형 아파트가 6억이 된다고 해서 평수가 60평이 되나요? 땅은 땅일 뿐 집은 여전히 거기에 있는 50평 집일 뿐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걸 잊고 있는 겁니다. 집은 가족이 저녁에 모여 서로 부대끼며 궁둥이 맞대고 사는 ‘공간(空間)’입니다. 그것이 값이 올랐다고, 남보다 덜 올랐다고 웃고 울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해외(海外) 얘기를 자주해서 죄송합니다만, “얘, 나 만 불(萬弗)만 꿔줘, 서울가서 줄께”라는 대화를 제 귀로, 제 눈앞에서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고급 시계백화점에서의 일이죠. 수출로 몇 천 불, 몇 만 불을 벌기 위해 애쓰고 땀흘리던 젊은시절 저에겐 아주 쇼-킹한 대화였습니다.만 불이면 지금 돈 천만 원입니다. 퍼뜩 ‘아, 이 아줌마 아파트 값이 왕창 뛰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국내에선 미친듯이 부동산 열풍이 불던 때였거든요. 이후, 이런 열풍에 뛰어들 자신도 마음도 주머니 여유도 없었던 저는 부동산에는 부동심(不動心)으로 대처하자는 확고한 다짐을 했습니다. 너무 소극적이고 등신스럽지 않냐고요? 조금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제가 얻은 것은 마음의 평화, 가정의 평온, 이사 다니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남 이런 것들입니다. 또 만나기만 하면 값을 들먹이고 ‘개발’을 얘기하는 사람들의 안달과 불만족, 어느 때는 의기양양해 하면서도 느글느글한 얼굴에 가득한 욕심 등을 보고 제 나름대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즐기기도 합니다.
투기를 막는 온갖 좋은 정책이 총동원 되더라도 국민들에 부동심(不動心)을 심어주는 정책이 제일 효과적이고 근원적인 치유책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도쿄(東京)를 팔아서 하와이(Hawaii)섬 전체를 살 수 있다는 ‘전설’이 일본(日本) 경제에 남겨 준 크나큰 후유증을 보며, 우리도 이 짓을 되풀이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정원교․도미노/서울교구 수유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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