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박 타박 타박네야 . . .

김정이(정혜엘리사벳)·2005. 8. 24. 오후 7:06:37
 

타박 타박 타박네야 . . .

한 해의 끝자락에 절친한 지인으로부터 송년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서슬 푸르던 유신독재의 암울한 사회 상황을 노래로 풍자하여 억눌린 소시민들의 심금을 달래주던 통기타 가수 서유석의 디너쇼였다.

 

"타박 타박 타박네야~~”라는 가사와 함께 구슬픈 가락을 따라 그 시절을 아파했던 기억이 아니더라도, 20년도 훨씬 더 넘은 그 때로 훌쩍 되돌아간 것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연회석을 둘러보니 좌석을 꽉 매운 사람들의 대부분은 중장년 연배로써 이 사회 각 분야의 지도계층들일 것이라고 추측되어졌다. 환갑이 넘은 청년 가수가 쇼의 시작에서 미리 그 뜻을 알렸던 대로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들을 노래로라도 달래주고 싶었을 만큼 그 자태와 안색들이 어쩌면 그렇게 다들 하나같이 굳어지고 지쳐 보이던지 그 사회계층만의 고유한 도도함 같은 거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귀에 익은 옛 노래들에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즈음, 낯선 노래 가사의 한마디가 나로 하여금 허탈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지금 그 가사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내용은 대충 이렇다. 장성한 아들과 함께 밥상머리에서 세상 이야기를 나누던 아버지가 ‘네 놈이 알고보니 빨갱이였구나……’라고 호통치며 상을 뒤집어엎는다는 가사였는데, 그 노래를 듣고 있는 나의 마음은 그 해학의 씁쓸함에 허허로웠다.  

 

" 빨갱이……”

어린 시절, 아버지는 큰딸인 나와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겨하셨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나를 이리저리 설득시키려고 유별나게 자식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아버지는 밤을 새워가며 당신이 살아오신 격동의 세월과 그 시간들 속에서 터득해 온 당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곤 하셨다.  

 

유신독재 종말에 이어진 군사정권의 서막과 함께 대학에 입학한 나는 그런 아버지와 늘 의견이 대립하여 삐딱한 반항을 해대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그런 나를 아버지는 빨갱이라고 몰아붙이진 않으셨다.   그런데 이젠 많이도 늙으신 내 아버지가, 이즈음 부쩍 두 아이의 어미이자 한낱 가정주부인 나를 빨갱이 족속이라며 자주 빈정거리시곤 한다. 18세의 학생 신분으로 참전하여 공산군과의 사투를 겪어내신 내 아버지의 노심초사를 이제 나는 백 번도 더 이해해 드리고 싶다. 하지만 이 땅에 빨갱이 논쟁이 끝나려면 앞으로도 한 오십 년쯤은 더 지나야 할까?

 

새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뜻이 맞는 동네 사람들과 포장마차의 조촐한 축하자리에서 흥겨워하던 기억과, 대형 화면을 통해 취임식을 딸아이와 함께 지켜보며 설레던 기대가 너무 멀리서 아른거려온다. 이상주의자인 나에게 새로운 꿈이 하나 더 생겼다면 이렇게 벅차게 당선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날,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쳐주고 싶다는 거였는데……

 

성급한 속단으로 치달리는 사람들의 매서운 질책의 소리에 한없이 위축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나눔과 정의의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의 순리를 매섭게 가로막는 기존 질서의 힘은 국가경쟁력 확보와 경제 성장을 우선으로 자리매김 해놓은 자본주의의 이기주의적 망령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성공을 최우선의 목표로만 두고 달음박질 치는 한 가족의 불행한 삶을 상상해보면, 가정뿐 아니라 작은 사회나 국가조차도 어떤 가치를 우선에 두고 세상을 꾸려나가야 할 일인지 어렵지 않게 답을 구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해방 후 이념전쟁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은 나라……격변의 세월 속에서 진정으로 사람답게 사는 일에 대한 가치를 튼튼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슬픈 백성들이 모두 이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힘겨움에 지쳐있는 것 같다. 지난날 투쟁과 쟁취의 논리에서 벗어나,다함께 지켜내지못하면 나 역시 홀로 살 수 없다는 공존의 이해관계를 기득권층이 지혜롭게 터득해야 할 때가 아닐는지 반성해본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보고 내 아버지의 세대들은 빨간 철부지 나부랭들이라고 혀를 끌끌거리실란가……

 

“무화가 나무를 보고 배워라”(마태 25,32)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 신앙인들만이라도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넓고 크게 멀리 관조해 보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타박 타박 타박네야……

가는 길이 너무 힘에 겨우면 좀 쉬어간다 한들 누가 뭐라 하랴마는, 다들 너무 빨리 급하게 여기까지 몰고 온 후유증을 조금은 더 오래 견디어 내야 할려나보다.

 

<김정이 * 정혜 엘리사벳 / 서울교구 한강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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