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도 내겐 은총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이 그득했던 어린시절엔 하느님이 계심을 안다는 게 부담스러웠고
순종이라는 말조차도 싫었다. 그땐 절대로 하느님께 순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곧잘 큰소리 치곤했었다.
그토록 기가 세던 내가 20대 초반의 나이에 하늘아래 영원한 것은 없으며, 세상사라는 것이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찮은 시련 하나가 나를 그렇게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그 때 이후, ‘아,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주님의 뜻에 따라 봉사하는 삶을 시작했었다.
그러던 내가, 결혼으로 새롭게 꾸려진 가족으로 인한 시련으로 세상 속으로 팽개쳐져야만 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나를 이렇듯 힘들게 하시느냐고 대들어 보았지만 주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내 모습이 완성될 때까지 천천히 쉬지 않고 나를 빚고 계셨다.
하느님께서는 끈기 있게 기다려 주시기도 하지만 결코 당신의 목표를 쉬 포기하지도 않으신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방향에서 오시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심을 나타내 보이시곤 하심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비록 시련일지라도 하느님께선 끊임없이 무언가를 우리에게 던져주시며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또 다른 시련이 나를 쓰러뜨리려 한들 고여 있는 물을 휘저어 썩지 않게 하려 하심을 알기에 넘어지더라도 일어설 것이다.
구약의 성조들은 하느님께서 자기들의 이름 앞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신 말씀을 빌미로 삼아 ‘자기만의 하느님’인양 스스로 으스대가며 하느님을 부름으로써 자기들의 영혼을 하느님께 꽁꽁 묶어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도 지겹고 끈질기게 거역하고 배반하는 유다민족을 차버리지 못하셨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살며시 ‘순백마리아의 하느님’을 불러본다.
소돔과 고모라 때문에 비는 아브라함의 기도와 방주를 정성껏 준비하는 노아의 마음으로 또 하느님과 밤새 겨루어 복을 받아내는 야곱의 믿음을 갖고 하느님께 고백하고 기도드린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 앞에 바다의 모래알 같은 한 인간의 고백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모든 사람의 신앙과 고백이 각자를 뛰어넘어 공동체에 전해지도록, 그것들이 모여 풍요한 세상의 소금가마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드린다.
<허순백 * 마리아 / 인천교구 중2동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