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로야 나오너라… 갇힌 형제들이여 나오너라
“세상에 태어나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것만큼 서럽고 가슴아픈 일은 없을 것 같다”며
가족조차 포기했다는 형제의 편지,
어린아기를 데리고 수형생활을 하다가 아기가 18개월이 넘어 교도소 밖으로 나가야 하고 엄마는 남은 형기를 살아야 되는데 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 고민하던 엄마의 편지,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황폐해진 가슴 한켠에 사랑을 싹틔울 씨앗이 한 톨 남아 있음을 발견하고는 세례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고픈 열망이 담긴 형제의 편지 등 애절함과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담긴 교도소에서 온 편지들을 받습니다.
이 편지들 속에는 교도소에 들어오기까지의 사연과 아픔이 있고, 개인적인 잘못과 욕심으로 인해 스스로 자신에게 갇히고 얽매여서 절망 속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고통도 있습니다. 또한 부모에게 버림받고 배우지 못해 범죄와 가까이 할 수밖에 없어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람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죽음을 체험합니다. 자신의 인격은 거의 사라지고 국가에서 지급하는 수의가 입혀지고, 자신의 이름대신 수번으로 불려지고, 사회적으로 쌓아 놓았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사람들에게도 잊혀져버리는 사회적 죽음을 체험합니다. 따라서 감옥은 절망과 좌절 속에 죽음이 느껴지는 사회적 무덤을 연상시킵니다. 사회는 범죄자들이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조용히 죽은 사람처럼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과 같은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죽은 지 며칠이 지나 주검의 냄새가 지독하다고 포기하라고 했지만 죽은 나자로를 살리셨습니다. 주검의 냄새가 지독한 무덤에서 나자로를 불러내시고 그에게 새로운 생명과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자로를 무덤에서 생명의 세상으로 불러내셨듯이 갇힌 형제들을 향해서도 힘차게 외치십니다.
“'나자로야, 나오너라’ 하고 큰소리로 외치시자 죽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가게 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요한11,43-44)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