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 해야 할 일

윤일순 수녀·2005. 10. 4. 오후 3:34:20

 하고 싶은 일 / 해야 할 일


인간은 처음부터 삶 속에서 자신의 색깔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 기본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잘 살리면 개성 있고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 그러나 신앙이라는 그림은 인간이 원하는 색깔과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롭게도 하느님과 함께 그려가는 또 다른 그림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에서나 사도직 현장에서 하느님 나라와는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일’로 채워나가며 -마치 그 성취가 ‘하느님의 일인 양’- 보람으로 알고 만족해 한다. 그리고 이것을 너무도 당연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물질적인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그것이고, 지나치게 많은 것에 호기심을 갖고, 많은 것에 시선을 돌리고 호화로움을 찾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일 터이다. 이런 자세는 결국 이들 공동체 원래 모습에 대한 정체성을 혼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 혼미가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우매한 나를 만들어가게 한다.

 


이렇듯 ‘하고 싶은 일’에 사로잡혀 한 공동체를 이끌어가다 보면 많은 경우 슬프게도 ‘우매한 나’ 때문에 우는 사람, ‘우매한 나’ 때문에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 ‘우매한 나’ 때문에 교회를 등지는 사람이 생기게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이런 공동체에서는 사람을 살리기 보다는 서로를 각박하게 치닫게 한다.

 

결국 이런 내 방식대로의 공동체는 한갓 이 세상의 먹거리, 살거리, 입을거리를 놓고 서로가 서로를 상처 내며 피흘리게 하고 허우적거리며 사는 모양새만을 보여줄 뿐이다. 진정한 의미로 하느님 나라를 위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싫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고 그것은 바로 ‘복음’을 나누며 사는 일일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만 하고 있다’는 고백은 2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우리 모두의 고백이기도 하다.


온갖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탐욕과 절제, 뉘우침과 되돌아봄을 반복하면서도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해본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내 모습을 어떻게 함께 그려주실지를 기도를 통하여 고대해 본다.

<윤일순․님파 수녀/거룩한말씀의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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