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

프란치스코 모랄레스

신부 · 순교자

프란치스코 모랄레스

(Francis Morales)

방지거 · 프란시스코 · 프란체스코 · 프란체스쿠스 · 프란츠 · 프란치스쿠스 · 프랑수아 · 프랜시스

9월 10일📍 나가사키(Nagasaki)🕰 +1622년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10일 목록에서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잔혹한 고문을 받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언덕 위에서 순교한 예수회의 복자 세바스티아노 기무라(Sebastianus Kimura) 신부와 도미니코 수도회의 복자 프란치스코 모랄레스(Franciscus Morales) 신부, 그리고 그들과 함께 50명의 동료가 순교했다고 기록하며 그들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50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사제 · 수도자 · 평신도 교리교사 · 제3회원 · 성모 로사리오회 회원은 물론 부부, 과부, 청년, 어린이 등 다양한 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모두 1867년 7월 7일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복자 알폰소 나바레테(Alphonsus/Alfonso Navarrete)와 그의 동료 204위, 1617년에서 1632년 사이 일본에서 순교한 사람들’이란 명칭으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되었고, 보통 ‘일본의 205위 순교복자들’로 불린다.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에서 성 바오로 미키(Paulus Miki, 2월 6일)와 25위의 동료가 순교한 이후 일본에 남은 선교사들은 모두 일본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런데 30여 명의 사제는 교우들을 위해 남아서 숨어지냈다. 1598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사망한 후 박해가 잠잠해지면서 예수회를 비롯해 선교사들의 활동이 재개되어 1612년까지 평화롭게 지내며 교회 또한 크게 성장하였다. 1612년 몇몇 지방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아들인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 막부 시절에 모든 선교사를 추방하고 교회를 파괴하거나 폐쇄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금지하는 칙령이 반포되면서 박해는 더욱 광범위해졌다.

그로 인해 수천 명이 순교하면서 많은 가톨릭 신자가 지하로 숨어들어 메이지 유신 이후 1873년 종교의 자유가 회복되기까지 은밀히 신앙생활을 이어가면서 ‘카쿠레 키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가 생겼고, 오늘날까지 일부 지역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전통과 신앙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복자 프란치스쿠스 모랄레스(또는 프란치스코 모랄레스)는 16세기 에스파냐의 마드리드(Madrid)에서 태어났다.

그는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산 파올로(San Paolo) 수도원에서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여 교육을 받고 사제품을 받았다.

서품 후 1598년 필리핀의 마닐라(Manila)에 도착해 신학 교수이자 설교자로 활동했고, 1601년에는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수도원에서 일본에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설립하길 원하는 일본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자주 만나고 사츠마(Satsuma) 영주의 편지를 받으면서 일본 진출 계획을 구체화했다.

그 결과 1602년에 일본을 향한 도미니코 수도회 최초의 선교 활동이 시작되었고, 복자 프란치스코 모랄레스는 첫 선교단의 단장으로 선출되어 다섯 명의 수도회 사제들을 이끌고 일본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20여 년 동안 주로 사츠마 지역과 나가사키에서 설교와 교육에 힘쓰면서 신자들의 신심 조직을 만드는 데도 헌신했다.

그렇게 시작된 로사리오회(묵주회)와 자선회 등은 선교사들이 체포되거나 추방된 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614년 일본에서 선교사 추방령과 함께 두 번째로 대규모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복자 프란치스코 모랄레스는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시골에 숨어서 은밀하게 선교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지역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통해 은밀히 이동하며 평신도 교리교사와 신심 단체 회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던 중 1619년 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나가사키 당국에 의해 이미 많은 그리스도인이 갇혀 있던 오무라(Omura)의 스즈타(Suzuta)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극도로 열악한 감옥에서 수년간 갇혀 지냈다.

그러면서도 할 수 있는 선교 활동을 계속했고, 마닐라의 장상에게 보고서를 보내 선교지의 현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던 중 1622년 9월 나가사키로 이송된다는 통보를 받고 복자 프란치스코 모랄레스와 여러 수도회의 선교사들 그리고 일본인 그리스도 신자들은 순교를 준비했다.

그렇게 나가사키의 골고타 언덕으로 불리는 니시자카(西坂, Nishizaka) 언덕에 도착한 복자 프란치스코 모랄레스와 동료들은 9월 10일 화형과 참수형으로 순교했는데, 22명의 수도자는 화형으로, 나머지 30명 신자는 참수형으로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화형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처형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만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수도자들의 손은 기둥 뒤로 느슨하게 묶여 있어서 신앙을 포기한다면 탈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듯했으나 누구도 신앙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렇게 52위의 순교자가 모두 화형과 참수형으로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일본의 205위 순교복자들은 개별적으로 순교한 날에 각자의 기념일을 지내지만, 일본 교회는 특별히 52명의 순교복자가 탄생한 9월 10일을 ‘일본의 205위 순교복자’를 함께 기념하는 축일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이들 52명의 순교를 ‘나가사키 대순교’ 또는 ‘겐나 대순교’라고 부르는데, 후자는 1615년 7월부터 1624년 2월까지를 가리키는 일본의 연호가 겐나(Genna)라서 붙은 명칭이다.

다양한 연령대와 신분으로 이루어진 9월 10일 ‘겐나 순교자’들의 이름은 아래와 같다.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인 복자 안젤로 오르수치(Angelus Orsucci, 1573년 이탈리아 루카 출생) · 복자 알폰소 데 메나(Alphonsus de Mena, 에스파냐 로그로뇨 출생) · 복자 성 히야친토의 요셉 살바네스(Josephus Salvanes of St. Hyacinth, 1580년 에스파냐 비야레호 데 살바네스 출생) · 복자 히야친토 오르파넬(Hyacinthus Orfanell, 1578년 에스파냐 발렌시아의 야나 출생) 그리고 같은 수도회의 수도자인 복자 로사리오의 도미니코(Dominicus of the Holy Rosary, 일본인)와 복자 알렉시오 사부로(Alexius Saburo, 일본인).

작은 형제회 신부인 복자 성녀 안나의 리카르도(Richardus of St. Anne, 1585년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출생)와 복자 베드로 데 아빌라(Petrus de Avila, 1562년 에스파냐 팔로마레스 출생) 그리고 같은 수도회의 수도자인 복자 성 요셉의 빈첸시오(Vincentius of St. Joseph, 1596년 에스파냐 아야몬테 출생).

예수회 신부인 복자 가롤로 스피놀라(Carolus Spinola, 1564년 에스파냐 마드리드 출생)와 같은 예수회의 수도자인 복자 곤디살보 푸사이(Gundisalvus Fusai, 1580년경 일본 오카야마 출생) · 복자 안토니오 큐니(Antonius Kyuni, 1572년경 일본 미카와 출생) · 복자 로사리오의 토마스(Thomas of the Holy Rosary, 일본인) · 복자 토마스 아카호시(Thomas Akahoshi, 1565년경 일본 히고 출생) · 복자 베드로 삼포/산포(Petrus Sampo/Sanpo, 1580년경 일본 오슈 출생) · 복자 미카엘 숨포/순포(Michael Shumpo/Shunpo, 1589년 일본 오와리 출생) · 복자 루도비코 카와라/가와라(Ludovicus Kawara, 1583년 일본 아리마 출생) · 복자 요한 주고쿠(Joannes Chugoku, 1573년경 일본 야마구치 출생).

작은 형제회 제3회원인 복자 레오 사츠마(Leo Satsuma, 일본인)와 복녀 루치아 데 프레이타스(Lucia de Freitas, 일본인); 교리교사인 복자 안토니오 상가(Antonius Sanga)와 그의 아내인 복녀 막달레나 상가(Magdalena Sanga); 조선 출신의 교리교사인 복자 안토니오(Antonius Coreanus)와 그의 아내인 복녀 마리아(Maria)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12살의 복자 요한(Joannes)과 3살의 복자 베드로(Petrus); 복자 바오로 나가이시(Paulus Nagaishi, 일본인)와 그의 아내인 복녀 테클라 나가이시(Tecla Nagaishi, 일본인)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7살의 복자 베드로 나가이시(Petrus Nagaishi); 복자 바오로 타나카(Paulus Tanaka, 일본인)와 그의 아내인 복녀 마리아 타나카(Maria Tanaka, 일본인); 복자 도미니코 샤마다/하마다(Dominicus Xamada/Hamada, 일본인)와 그의 아내인 복녀 클라라 샤마다/하마다(Clara Xamada/Hamada).

포르투갈 출신 군인으로 일본에 정착했다가 1619년에 순교한 복자 도미니코 호르헤(Dominicus Jorge)의 아내인 복녀 엘리사벳/이사벨라 페르난데스(Elisabeth/Isabella Fernandes, 에스파냐인)와 4살 된 아들인 복자 이냐시오 호르헤(Ignatius Jorge); 1619년에 순교한 복자 안드레아 토쿠안(Andreas Tokuan, 일본 나가사키 출생)의 아내인 복녀 마리아 토쿠안(Maria Tokuan, 일본인);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인으로 1619년에 순교한 복자 코스마 타케야(Cosma Takeya)의 아내인 복녀 아녜스 타케야(Agnes Takeya, 일본인); 1619년에 순교한 복자 요한 쇼운(Joannes Shoun, 일본인)의 아내인 복녀 마리아 쇼운(Maria Shoun, 일본인).

복녀 도미니카 온가타/오가타(Dominica Ongata/Ogata, 일본인), 복녀 마리아 타나우라(Maria Tanaura, 일본인), 일본인 과부인 복녀 아폴로니아(Apollonia)와 복녀 가타리나(Catharina); 1619년에 순교한 복자 마티아 나카노(Matthias Nakano, 일본 오무라 출생)의 아들인 복자 도미니코 나카노(Dominicus Nakano, 일본인); 복자 바르톨로메오 카와노 시치에몬(Bartholomaeus Kawano Shichiemon, 일본 아리마 출생); 복자 다미아노 탄다 야이치(Damianus Tanda Yaichi, 1582년 일본 오무라 출생)와 5살 된 그의 아들 복자 미카엘 탄다(Michael Tanda, 일본인); 복자 토마스 시치로(Thomas Shichiro, 1552년 일본 출생)와 복자 루포 이시모토(Rufus Ishimoto, 일본인); 복자 클레멘스 오노(Clemens Ono, 일본인)와 그의 아들인 복자 안토니오 오노(Antonius Ono, 일본인)이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