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

페르디난도 아얄라(성 요셉의)

신부 · 순교자

복자 페르디난도 아얄라(성 요셉의)

(Ferdinand Ayala of St. Joseph)

요세푸스 · 요제프 · 조세푸스 · 조세프 · 조셉 · 조제프 · 주세페 · 쥬세페 · 페르디난두스 · 페르디난드 · 호세

6월 1일📍 오무라(Omura)🕰 1575-1617년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일 목록에서 일본의 오무라에서 도미니코 수도회의 복자 알폰소 나바레테(Alphonsus Navarrete) 신부와 아우구스티노 은수자회의 성 요셉의 복자 페르디난도 아얄라(Ferdinandus Ayala de Sancto Josepho) 신부, 예수회의 레오 타나카(Leo Tanaka) 수도자가 최고 통치자인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증오와 함께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고 기록하며 그들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그들은 모두 1867년 7월 7일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복자 알폰소 나바레테와 그의 동료 204위, 1617년에서 1632년 사이 일본에서 순교한 사람들’이란 명칭으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되었고, 보통 ‘일본의 205위 순교복자들’로 불린다.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Nagasaki)에서 성 바오로 미키(Paulus Miki, 2월 6일)와 25위의 동료가 순교한 이후 일본에 남은 선교사들은 모두 일본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런데 30여 명의 사제는 교우들을 위해 남아서 숨어지냈다. 1598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사망한 후 박해가 잠잠해지면서 예수회를 비롯해 선교사들의 활동이 재개되어 1612년까지 평화롭게 지내며 교회 또한 크게 성장하였다. 1612년 몇몇 지방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아들인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 막부 시절에 모든 선교사를 추방하고 교회를 파괴하거나 폐쇄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금지하는 칙령이 반포되면서 박해는 더욱 광범위해졌다.

그로 인해 수천 명이 순교하면서 많은 가톨릭 신자가 지하로 숨어들어 메이지 유신 이후 1873년 종교의 자유가 회복되기까지 은밀히 신앙생활을 이어가면서 ‘카쿠레 키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가 생겼고, 오늘날까지 일부 지역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전통과 신앙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복자 페르디난두스 아얄라(또는 페르디난도 아얄라)는 1575년 에스파냐 중남부 톨레도(Toledo) 교구의 시우다드레알(Ciudad Real) 교외의 발레스테로스(Ballesteros)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수도 성소를 느낀 그는 1593년 몬티야(Montilla)의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에 입회하여 이듬해 첫 서원을 하며 성 요셉의 페르디난도(Ferdinando de San Jose)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는 마드리드(Madrid) 외곽 알칼라데에나레스(Alcala de Henares)에서 수학한 후 사제품을 받고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초청받았으나 선교 열정이 넘쳤던 그는 필리핀 제도로 파견되는 선교단에 합류하였다. 1603년에 출발해 태평양을 횡단하기 위해 멕시코에 잠시 머문 후 1604년에 필리핀에 도착해 1년 정도 머물다가 1605년에 일본으로 들어갔다.

그는 일본에 도착해 얼마간 일본어를 배운 후 오사카(大阪, Osaka)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선교 활동을 펼쳤다.

그가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비교적 선교 활동이 자유로운 평화로운 시기였기에 교리교육과 세례를 받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한 연대기 작가는 그가 2년 동안 어른과 아이들을 포함해 약 3천 명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기록했다. 1607년에 그는 더 많은 수도자 파견을 요청하러 필리핀에 갔다 왔고, 얼마 후 일본 내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관구장 대리로 임명되었다.

그는 1612년에 나가사키에 작은 수도원도 설립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박해의 광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1614년 일본에서 선교사 추방령과 함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점점 심해졌을 때, 그는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일본에 남아서 몇몇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사목활동을 수행했다.

결국 일본에서 1597년의 대박해 이후 두 번째 대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첫 출발은 1617년 5월 22일 나가사키 근처 오무라 다이묘(大帝)의 근거지인 쿠시마 성(玖島城, Kushima) 인근 코리(Kori) 지역에서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소속 승천의 복자 베드로(Petrus of the Assumption) 신부와 예수회의 요한 세례자 마차도(Joannes Baptista Machado) 신부가 참수당한 사건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도미니코 수도회의 복자 알폰소 나바레테 신부는 목숨을 걸고 오무라로 가서 두 선교사의 유해를 수습하고 그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동요하는 신자들을 격려하고자 했다.

그때 그의 계획을 듣고 기꺼이 고난의 길을 함께 걷기로 한 이가 아우구스티노 은수자회의 성 요셉의 복자 페르디난도 아얄라 신부였다.

두 용감한 선교 사제가 나가사키를 떠나 오무라로 향하자 인근 지역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들을 찾아와 고해성사를 요청했다.

그 여정에 예수회의 수도자 또는 평신도 교리교사인 복자 레오 타나카도 함께했다.

그들은 오무라에 도착해 먼저 두 순교자의 무덤을 찾아 기도하고, 동요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신자들이 운집하는데 격분한 오무라의 영주는 병사들을 시켜 그들을 체포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지역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많아 폭동을 두려워한 나머지 성 요셉의 복자 페르디난도 아얄라 신부 일행을 배에 태워 무인도에서 처형하기로 했다.

결국 그들은 6월 1일 오무라 인근의 여러 섬을 돌다가 인적이 없는 섬에서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처형 후 그들의 시신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찾을 수 없도록 돌과 함께 바다에 던져졌다.

일본의 205위 순교복자들은 개별적으로 순교한 날에 각자의 기념일을 지내지만, 일본 교회는 특별히 52명의 순교복자가 탄생한 9월 10일을 ‘일본의 205위 순교복자’를 함께 기념하는 축일로 지내고 있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