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퀴즈^^
여늬 자서전 적인 글이 그러하듯 이 사람도 좀 독특한 삶을 살아온 듯 합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났고 국비 부담으로 공부하는 사관학교 출신에 베트남 전쟁 참전도 하고
진급도 한 그가 방행을 틀어 미국에서 응용 수학 박사가 됬답니다.
그리고 이글에서는 4성장군과 자신 즉 대령출신 박사를 비교한 신문기사에 화가나
좀 시건방진 민주주의 론까지 들고 나오는 이 인간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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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최 하급의 야간 중고등 학교에 적을 두고, 학비를 벌면 학교에 나갔고, 학비 없으면 슬며시 그만두는 식으로 졸업장만 겨우 받아 대학교 입학시험 자격증을 마련했다. 그리고 하늘의 도움으로 육사에 갔다. 내 동기생들은 물론 모든 선후배들의 꿈은 ‘청운의 꿈’이었다. 알고 보니 그게 4성 장군이 되는 꿈이었다,
나는 사관생도 들 중 가장 특이한 생활을 했다. 공부에 보다는 독서에 몰두한 것이다. 동료들이 성적을 올리기 위한 학과공부를 할 때 나는 위인전과 영웅전을 읽었다, 그리고 사상계를 읽으면서 철학서적들을 접하게 됐다. 원서로 된 단편 소설들도 읽었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학교에 남아 독서를 하고 멜랑콜리에 빠지기도 하면서 물기 흐르는 정서를 기르고 가슴을 키웠다.
동기생 졸업 앨범에 내 미래의 꿈이 표현돼 있다. “전원에 살고 영원한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는 요지였다. 동기생들이 4성장군의 꿈을 꾸고 있을 때 나는 “자유인”의 꿈을 키웠던 것이다. 내 동기생들 중에는 4성장군이 여러 명 있다. 그런데 나는 어느 한 x신문 기자의 표현대로 하찮은 대령으로 예편한 사람이다.
<중 략>
내가 대령에까지 오른 것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스탠포드나 하버드 학비의 2.5배에 해당하는 고가의 귀족학교로 불리는 미해군대학원에서 4년 6개월 동안 석-박사 학위를 공부한 대가로 군인 규정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의무연한을 채우다 보니 오른 계급이었다. 경영학 석사와 응용수학 박사를 획득하는 과정은 삶과 죽음의 기로를 스스로 선택한 악전고투요 최고봉의 극기를 바쳐서 얻은 것이기에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요 프라이드요 내가 내는 힘의 원천이다. 별 4개가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 직위와 맞바꾸자 해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정신적 자산(sentimental value)이다.
그만큼 나는 정신적으로 도도하게 살아왔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 장관을 하라 해도 거절했고, 2000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에서 전국구를 거저 준다 했고, 정책위 의장 자리를 준다 했지만 또 거절했다. 이 모든 도도함은 내게 엄청난 정신적 자산이 쌓여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가의 돈으로 미국에서는 알아주는 귀족학교인 미해군대학원, 응용수학으로 최첨단 과학들을 매일 새롭게 응용하여 세계 최강의 군대를 경영하는 미해군이 세운 특별한 대학원, 거기에서 나는 학위를 땄고 교수도 했다. 나는 그 학교에 신화를 남겼다. 이것이 모두 국가가 내게 베풀어준 은혜였다.
나는 늘 내가 국가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사명감 같은 것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늘 내가 대통령이라는 생각으로 국가적 현실을 분석해 왔다, 김대중 같은 인간이 국민을 속이려고 “난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로 국민을 현혹했다.
<중 략>.
1981년부터 7년 동안 나는 15명의 석박사들을 이끌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한민국의 유전자 도면을 파악하고 또 파악했다. 이것이야 말로 준비된 국가경영능력이 아니겠는가? 나는 전문분야를 상식 용어로 통역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전문가가 전문용어를 가지고 어찌 대통령을 설득시킬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전문가들은 전문세계를 일반 용어로 통역을 잘 해야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
내가 연구결과를 국방장관이나 총장들에게 전문용어가 아닌 일반 용어로 알기 쉽게 설명하면 그들은 모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4성장군을 마쳤다. 그런데 내가 왜 중령인 지박사보다 군을 더 모르냐?” 내가 군의 실상을 설명해주면 그들은 금방 흥분하며 “군이 썩었어” 곳곳이 썩어있는 군의 실상에 분노했다. 윤성민 당시 국방장관은 ‘한국군 행정은 삼국지행정이다“ 이렇게 공언했다. 나와 한 조가 되어 5년동안 군의 예산개혁, 비용에 대한 의식혁명을 주도하면서 했던 표현이었다. 내가 중령이었을 때 그 어느 군의 간부들도 나를 ‘x중령’이라 부르지 않았다. 언제나 “x박사”였다.
나는 어렸을 때 시골의 넓은 마당에서 멍석 깔고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누워 별을 보고 개똥별을 보며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 이승만 박사는 무슨 박사야?” “철학 박사지” “무슨 박사가 젤 머리 좋은 박사야?” “수학박사란다” “그럼 나 수학 박사 될거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수학 중에서도 가장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응용수학 박사가 됐다.
6.25 전쟁 중, 군대 간 동네 형들 중에는 입심이 좋고 뻥을 잘 치는 형들이 있었다. “형, 형이 칭찬하는 육사가 뭐야?” “응, 육군사관학교에서 4년 동안 대학공부를 한 사람들인데 정의감이 넘치고 원리원칙대로 하고 용기가 대단한 사람들이야. 쫄병들이 다 존경한단다” “형, 그럼 나도 그런 사람 될 수 있어?” “물론이지, 그런데 공부를 아주 잘해야 된다더라” “형 그럼 나 이제부터 육사 갈 준비 할거야” 이상하게도 나는 몸무게와 키가 육사기준에 좀 못 미치는데도 한번은 낯선 소령, 또 한번은 낯선 대령의 현장 도움을 받아 육사엘 갔다,
이런 걸 보면 현실성은 없어도 순수한 마음이 원하면 하늘은 그 소원들을 들어주는 것 같다. 내 소원은 육사와 수학박사, 그것으로 모두 성취됐다. 내가 사관학교를 고마워하는 것은 그 곳에서 내가 인생 처음으로 정상적인 정규교육을 받았기 때문이고, 자유가 보장된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독서를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나는 전투 프로가 되려는 욕심으로 베트남 전쟁터에 자원했다. 소위-대위에 이르기까지 게릴라를 상대로 하여 4년 동안 전투경험을 쌓았다. 이는 더욱 자랑스러운 나의 경력이었다. 이 이상의 자랑스러운 경력도 드물 것이다. 이건희의 재산보다 더 소중한 것이 내가 걸어온 데 대한 자부심이다.
베트남의 모래 바닥에서 소위에 불과한 나는 미군 소령과 격전을 벌였다. 한국군 장군 위에 군림하려는 미군 소령의 발밑에 소총을 쏘아 그의 버릇을 가르쳐 주었다. 그 일로 그 소령은 그의 부대에서 전출됐다, 나는 갓 중위로 진급하여 베트콩으로부터 ‘한국군 포에는 눈이 달렸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포병 운용을 두뇌화시켰다, 그리고 나서 나는 육사졸업 9년 만에 방향을 180도 바꾸어 학문적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 략>
민주주의!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나는 수학분야에서 몇 번째 의자에 앉아 있다. 나는 성악 분야에서 몇 번째 의자에 앉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것이 민주주의 사회다, 모든 분야에서 첫 번째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정치세계로 몰려든다면 그런 사회는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토양을 상실한 사회다.
박사와 장군 중 누가 더 상위인가? 장군과 교수 중 누가 더 상위인가? 이런 병정잡기 식의 질문은 민주주의식 질문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보장하는 정치 시스템이다. 장군과 예술가 사이에 서열을 정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북한의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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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도 30분 후에 자삭됩니다.
제 미니 홈피에 스스로 삭제한 글을 복사해두니까
정답이 궁금한 분은 제 미니 홈피를 방문해 주십시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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