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의 타락에 관한 고발글 (자게펌)
자게판에서 오늘 하상글로 신분상승된 글을 퍼왔습니다. 이런 글의 효용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저도 처음에는 지독한 거부감을 느꼈지만 오늘에는 사제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는 유익함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게판이 정치판으로 변질되어 건전한 비판과 다각적인 검토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오늘, 이곳에서라도 원하시는 분들은 다양한 관점을 표현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일간지에 보도된 한 미국신부의 끔찍한 살인이 기억난다. 1980년 본당수녀를 살해하고,20여년이 지난 2006년에 범죄사실이 밝혀져 수감되었다. 수감중 교도소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에 대해 소속 교구장은 사제로서의 장례예식을 치루겠다고 발표했고, 여론은 이에대해 부정적이라는 보도였다.
어떤 결정이 내려졌는지는 모른다. 다만 내게 충격적인 것은 ,범죄가 밝혀진 20여년동안, 그사제는 일상의 사제모습으로, 그리스도신비의 절정인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그 끔찍한 손으로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했으며,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웃음속에 신자들을 지도했다는 것이다. 가증과 뻔뻔함의 극치다. 죄에 무감각한 이사제의 태도는 충격을 넘어 공포다. 그렇다면 비단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죄의 무감각 만이, 가증과 뻔뻔함의 공포일까?
언제부터인지 일부 한국사제들의 부조리함이 도드라졌다. 사제는 사도들의 후예인 주교들을 도와 "하느님의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봉사자임에도 때론 주교의 방침을 거스르고 독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고, 신자들 위에 군림하려는 권위적인 태도를 거침없이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사무원을 일용직근로자처럼 어느 한날 해고하고, 사목위원의 결정을 한순간에 뒤엎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신자들에게 고성을 지르고, 담을 쌓고 산다. 소외된 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비천한 신자들을 귀찮아한다. 그래서 일까. 저녁시간에 사제관의 전화벨은 공허할 뿐이다. 친분이 있어 휴대폰번호를 알기 전에는 통화가 불가하다. 그리고 때로 저녁의 사목은 주방의 식복사자매님 몫이라는 생각도 든다.
베풀기보다는 받기를 좋아한다. 때론 노골적이다. 신자들의 정신적양식을 위한 신중한 사색보다는, 룸살롱을 다니며, 자신의 쾌락을 즐기기도 한다. 어쩌다 신분이 노출되면 다른 술집으로 옯겨 끝없이 쾌락을 추구한다. 새로산 물건이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구석에 쳐박고, 며칠 후 ,새로이 다른 물건을 구입한다.
도대체 이러한 사제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랑과 희생과 정의를 말 할 자격이 있는가? 문제는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의미없다는 것이다. 일부 부조리함 속에 사는 사제들은 , 자신들의 부조리함을 느끼지 못하니까 말이다. 무감각. 정말 무서운 공포의 죄안에 갇혀 살고있다는 생각이다.
얼마전 한 사제의 말을 곱씹어 본다. "우리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처절한 고통뒤에 온 영광을 등에 업고 너무도 편안하게 그저 영광만을 추구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오늘 또다른 사제의 페이스북의 글. "우리 성직자들은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우리에게 준 감동들을, 진정 거짓없이 느끼고,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이미 무감각해진 부조리한 삶속의 일부 사제들에게 이런 외침이 들리기는 할런지. 그래도, 참담함속에서 글을 써보는 것은 ,교회의 정의를 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모여, 무감각의 벽을 깨뜨릴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함이다. 무수히 많은 좋은 사제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하여.
댓글 7
저도 마지막 문단까지는 그런대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래도 인내하며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범법자인 사제가 그렇게 잡히지 안고 사제 생활을 했다고 그것마치 일반화 된양 과장하고 또 은근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밝히며 (그냥 외국에서의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음에도-그리고 미국에서 사는 저도 못들은 이야기인데??) 은근히 반미의 편견을 가지고 떠벌리는 듯 한 인상을 주었고 또 한국의 신부들이 행실이 요즘 들어 도드러 진다는 것 또한 과장이고 일반화의 오류를 안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좋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사제들이 그래서 마치 특권을 주어지는양 똥폼 잡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거들먹 거리는 사제 있지요 그러면서 자신은 정결의 서약은 했지만 청빈의 서약은 하지 않았다며 엄청난 미사예물을 챙겨 재산을 불려가고 성당을 옮길때 마다 적지않은 전별금을 채근하기도 하는 신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일반화 된일인가요?
주교에게 항명하고 말을 듣지 않는 신부: 대표적으로 유무상통 마을의 창립자인 방상복 신부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희귀한 경우이지 그것이 이렇게 경종을 울려야 할 만큼 도드라진 일인가요? 골프치시는 것 이렇게 공격을 받을 만큼 나쁜 일인가요? 골프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그런 것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마지막 문단에 도착했는데 이문단이 이글의 경론이라 생각했습니다
전반부도 추기경님이 부유한 환경속에서 호의호식하고 산다고 헐뜯는 넘들이 있습니다. 바로 어떤 넘들인가 하면 교회의 정의를 밝힌답시고 정의 구현 사제단 열심히 운동하는 넘들이지요. 마지막 결론이 교회의 정의를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무감각의 벽을 깰수 있다? 이넘이 지금 정구사 이야기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좋은 사제들이라고 좀 희석은 했지만 그래도 저는 이글이 정구사를 대변하는 글이라 보았고 그래서 짧은 시간내에 30명을 모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이런 개혁의 글 추천 10을 넘기기 힘들다 생각하는데 웬 30병? ㅎㅎ 제가 너무 과민한가요?
듣고 보니 미국 얘기를 쓸데 없이 들먹였고, 마지막 문단에는 정의라는 말이 또 들어갔군요. 아마도 디토님의 날카로운 예감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필자는 반미 친정구사의 신자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아마도 유유상종이라고 급속한 추천 누적도 방증이 되겠지요.
그런데 세속화, 권위주의, 하극상, 관능주의의 문제는 성직자들 내부에 상당히 만연되어 있다고 봅니다. 특히나 정구사 사제들에 대해 저는 도덕적 우려가 깊습니다. 사회에서도 자신의 부덕함을 가리기 위한 방편으로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죠. 건달들, 양아치들, 불륜남녀들이 흔히 의리를 과도하게 표방하는 것과 유사한 일종의 보상심리의 발로겠지요.
폭탄을 던지면서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만 죽기를 바라는 게 어리석듯 저런 글을 던지면서 우파 성직자들만 쇼크 먹으라고 한다면 말도 안 되겠죠. 암튼.. 저는 그래서 저런 글은 그냥 둬도 필자의 의도와는 반대로 정구사 사제들에게 오히려 더 큰 impact를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야말로 헛된 바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