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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회복? 어느 수도자의 묵상?

디토·2014. 8. 10. 오후 2:14:50

저는 소위 수도사 출신 사제에 대해 아주 고약한 경험이 있어 수도원 신부님을 좀 삐딱하게 보는

버릇이 있음니다. 그런데 지난 번에도 한 수사 신부의 글을 고발 한 적이 있지만

우묵에 버젓이 올려진 이 글도 웃기는 짬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도원 출신 신부들은 제대로 신부 수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세속을 떠난 검소한 가난을 서약한 (보통의 신부님은 정결의 서약은 했어도 가난하게 살겠다는 서약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탐하는 신부들이 흔히 자신들은 독신으로 살지만 가난을 서약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정말 마음까지 정갈한 수도자라 생각하기 쉬운데 간혹 평신도들에게 사랑이 받고 싶은 건지 간혹 오버하는 수도자 출신 신부들이 이런 말도 채 안되는 허접한 강론? 또는 묵상?을 고고한 선지자의 음성?이라고 주장하는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야당이 야성을 잃으면 아무짝에도 쓸데가지 없다는 말을 하기위해서 쓴 것 처럼 보이는데 주저리 주저리 되지도 않는 성경말씀을 치켜 세우며 자신의 주장을 호도하는 것이지요. 이런 허접한 글을 보는 평신도들이 자신보다 더 사회적 경험도 많고 실제적인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생활의 신학적인 지식도 앞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듯 합니다. 좀 머리가 나쁜건지 순진한 건지...


중간에 주저리 주저리 산상에서 기도하러 올라가신 예화와 바다위에서 풍랑에 겁에질린 제자들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늘어 놓은 묵상? 부분은 뺐읍니다. 그러나 결론 부분도 참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철학적 신학적 생각이 모자란건지 ㅎㅎㅎ 아마 이 신부님이 들으시면 그렇다 하실 겁니다.  그런데 저는 웃음만 나옵니다. 마음으로 읽지 않고 이성적으로만 읽어서 그런가요?

 

야성(野性)의 회복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    김명준(damiano53)  쪽지 조회수 159 번  호   90854
작성일   2014-08-10 오전 6:14:56 추천수 5 반대수 0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8.10. 연중 제19주일   열왕기 상19,9ㄱ.11-13ㄱ 로마9,1-5 마태14,22-33

                                                                                                           

야성(野性)의 회복


문명의 야만이란 역설의 시대입니다. 

야성을 잃어가는 시대입니다. 

야생화(野生花)같은 참된 야인(野人)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특히 야성(野性)을 잃은 야당(野黨)은 존재이유가 없습니다. 

야성을 잃는다는 것은 순수한 열정을 잃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야성이 사라진 그 자리에 마성(魔性)이, 야만(野蠻)이 자리 잡기 마련입니다. 


예전 군생활에 윤 일병 사건과 같은 잔인한 사건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야성은 있었지만 이런 잔혹한 야만의 폭력은 없었습니다. 

야성을 잃어가기에 마성의 악마요 괴물들입니다. 


다음 신문 컬럼에 공감했습니다.


-존 그레이가 말하듯 

“기술과 과학은 축적되지만 인간의 도덕은 언제나 새로 시작된다.” 

물질과 달리 인간과 관련된 부분은 세대를 거듭한다고 해서 더 발전하는 게 아니며, 

오히려 더 퇴보하기 일쑤다. 

교양 있고 예의바른 인간들이라고 해도 

갑자기 변화한 물적 조건이나 종교가 된 이데올로기 앞에서는 쉽게 야만인이 된다. 

야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야만을 ‘척결’한다는 불가능한 바람이 아니라, 

그 야만 속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래서 하느님을 찾는 구도자적 열정이 필수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열정이 있을 때 야만이나 마성은 순수한 열정의 야성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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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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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고 안팎으로 평화가 도래합니다. 

배 안에 있던 이들은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믿음을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새삼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주님과의 만남의 체험이 기도하게 만들고 믿음을 증진시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순수한 열정을, 야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1.고독을 추구하십시오.

2.기도하십시오.

3.주님과 만나십시오.


바로 이 거룩한 미사가 이 셋을 다 충족시켜 줍니다. 

사실 주님과의 일상적 만남에 미사보다 더 좋은 성사도 없습니다. 

바로 이 미사은총이 일상에서의 주님과의 만남 체험을 촉진시켜 줍니다. 


"나 주님께 바라네, 주님 말씀에 희망을 두네."(시편130,5참조). 


아멘.



댓글 6

다토·2014. 8. 10. 오후 2:56:34

저는 그렇다고 모든 수도원 수사 신부님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언급한 수사들은 한국에서 환인 신부님이 개설하고 제대로된 검증을 하지 못하고 수사를 양산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망있는 수도회의 수사님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산님이 올리시는 영치기 신부님은 정말 좋은 강론 말씀 어렵지도 않고 참 우리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좋은 말씀을 주십지다 무슨 야성이 어떻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씀 안하십니다. ㅎㅎㅎ

무명·2014. 8. 10. 오후 6:52:45

수사든 성직자든.. 돌팔이들이 끼어있는 것도 하느님의 디자인 같아요. 한편으로는 경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긍휼히 여기고 하느님의 자비를 구해야 하는 게 평신도들의 역할이겠지요.

초선·2014. 8. 10. 오후 8:50:38

몇 년 전까지 굉장히 좋아했던 신부님이십니다. 물론 강론으로요. 공감, 깨우침을 주셨거든요. 근데 정치적인 발언을 본 후로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무명·2014. 8. 11. 오전 8:19:30

사회교리는 세상 일에 대해서.. 양시론도 안 되고, 양비론도 안 되고, 한쪽 손을 들어줘도 안 되고.. 정말 하느님의 새로운 시각, 초월적이며 공평한 시각으로 새로운 빛을 세상에 드리워야 하겠지요. 요즘의 수도자 성직자들은 고기맛을 잘못 배운 중들처럼 빈대 벼룩만 잡아먹고 있습니다.

무명·2014. 8. 11. 오전 8:20:46

야성은 커녕.. 영성이나 지성은 커녕... 라면 봉지에 갇힌 산패한 짜파게티 같은 자들이 교회를 망치고 있어요.

디토·2014. 8. 11. 오전 10:42:00

무명님의 해설이 더 재미있네요 ㅋㅋ 빈대 벼룩만 잡아먹는 정구사 신부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