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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권한 (펌)

디토·2014. 7. 12. 오전 6:21:01
권위와 권한
작성자    김승욱(aquino6914)  쪽지 조회수 14 번  호   206736
작성일   2014-07-12 오전 5:23:18 추천수 1 반대수 0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요 며칠 사제의 전횡과 사제답지 못한 행동들로 인해서 상처받고 울분을 토로하는 몇몇 본당신자들의 

글들을 보며 너무도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본인이 몇년 전 우리 본당 사이트에 주임사제를 향해 

문제제기를 했던 글에 함께 인용했던 글을 이곳에 옮겨와 봅니다. 

글의 원본은 지금은 폐간되어 경향잡지에 통폐합된 -월간 사목- 의 1970년 5월 13호 입니다.

주로 사제들이 글을 올리고 사제들이 구독하였던 잡지였기에 -물론 평신도 역시 구입구독 가능- 사제의 

입장에서 쉬이 받아들여지기 어렵지 않으리라 봅니다. 




1970 5월호 ( 13)

권위(權威)와 권한(權限)                       에드워드 스티본슨


권위를 행사하는 관점에서 보거나 받아들이는 관점에서 보거나 간에 교회에서뿐 아니라 사회, 교육, 정치,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이 짤막한 글에서 잘 설명된 “권위”와 “권한”의 구별은 중요하다. 이 문제에 있어 이 글은 「사목」편집자들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사목」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잡지 “America 1970 1 17일자에 게재된 것이다. 필자는 미국 뉴욕주 버팔로에 있는 까니시우스 대학 철학과 교수이다. 〈편집실〉


다음과 같은 경우들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어떤 대학 학장이 시위운동자들에게 해산을 명한다. 어느 핵물리학자가 원자력의 효력을 증명한다. 순경이 과속 차량을 정지시킨다. 어떤 의사가 치료상 낙태를 강권한다. 교황이 인공 산아제한을 금한다. 어떤 역사학 교수가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진주만 사건을 계획했다고 주장한다. 어떤 상사(上士)가 적진 돌격을 명한다. 이러한 경우, 사용된 것은 권위인가 권한인가? 교수의 권위는 상사의 그것과 꼭 같은 방법으로 받아들여지는가? 순경에게 복종하는 것이 의사에게 복종하는 것과 꼭 같아야 하는가? 학장에게 복종하는 것과 과학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꼭 같아야 하는가?

오늘의 “권위의 위기”는 이러한 경우들에 있어 매우 다른 두 종류의 권위가 토의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 무엇에 관해서건 권위자가 되지 않고서도 권한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학문이나 경험 분야에서 권위자라고 해서 그 이유만으로 남을 지배할 권한까지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권한을 사용하는 것”과 “권위를 갖는 것”을 구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순경, 상사, 학장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고, 과학자, 교수, 의사는 그들의 특수 분야에 권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의 지배는 권위자의 그것과 전적으로 다르다.

예컨대 나는 왜 내 자유를 포기하고 어떤 사람의 권한 행사에 복종해야 하는가? 나의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양심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이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 남들과 협조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운전사라면 누구나 도로의 우측으로 차를 몬다거나, 군인이라면 다른 군인들과 함께 같은 방향, 같은 시간에 적을 공격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런 종류의 협조는 자동적인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경우들에는 부적당한 권한이라도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다 낫다. 남들과 협조할 필요가 있다. 협조하지 않는다면 혼란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보자. 만일 9 1일에는 모든 차량이 우측통행이 아니라 좌측통행을 해야 한다는 법이 통과된다면 그 법이 아무리 불합리한 법일지라도 그 법에 복종해야 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가 옳다거나 그의 계획이 가장 좋은 것이라 해서가 아니라, 복종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무질서가 초래되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어리석다 하더라도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권한의 행사는 진리의 소유를 주장하거나 계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방통행”이란 표말이 붙어 있으면, 그 지시가 좋다고 생각하든 않든 간에 그 지시에 따른다.

그러나 권위자에 대한 복종은 이와는 매우 다른 성질의 것이다. 권위자는 스스로 노력하여 존경을 받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과학자가 원자력의 효능을 입증할 때, 상원의원이 “그것을 증명하라, 그렇지 않으면 자금을 충당해 주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권위에는 맹종이란 있을 수 없다.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은 권한 행사의 경우와는 달리, 자기가 진리를 말하는 것이며, 자기의 설명이나 계획이 가장 훌륭한 설명, 보다 좋은 계획이라고 말한다. 누가 권위를 갖고 있다면 그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위는 권위자라는 지위에 선출되거나 임명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노력하여 그것을 획득해야 한다. 만일 남들에게 자기 의견에 따르도록 하고자 하면, 자기 의견이 좋다는 점을 그들이 받게끔 설복시켜야 한다. 권한은 나에게 동의가 아니라 복종을 명할 수 있으나, 권위는 복종이 아니라 동의를 명한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권한은 외적 행위를 명하는 반면에 권위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권위가 권위답지 않게 무능력할 때, 거기에 복종하는 것은 현명한 일도 아니며 도덕적인 일도 아니다.

이 두종류의 권위(“권위”와 “권한”)를 혼동하면 쉽게 권위의 위기가 초래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권위나 교황의 권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어느 종류의 권위로써, 즉 권한으로써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권위로써 말하고 있는가?”하고 물어 보아야 한다. “내 말이 옳으니 복종하라”고 말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는 이론에 근거하여 권위자로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복종하기 전에, 나에게는 그의 말이 옳다고 믿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부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있을 때 그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현명하지도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의사, 기사, 성직자는 자기 능력에 대한 주장에 근거하므로, 자기가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나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권위가 그릇되었을 때 그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아무런 도덕적 가치도 없다. 요약하자면, 권위는 나에게 맹목적 복종을 요구할 수 없다. 내가 권위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남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의사, 기사, 성직자 등등)이 권한을 가진 듯이 행동한다면 크게 잘못하는 것이다.

한편 권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합법적으로 선출되거나 임명된 사람으로서 당신을 지배할 권한을 갖고 있으니 내게 복종하라. 내가 명하는 바가 더 나은 계획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공동목표를 위하여 협조해야 한다. 물론 그 협조 행위는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책임을 지고 있으므로 복종하라.” 이런 상황에는 다른 논리가 성립한다.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목표달성에 필요하니까 그 일이 잘 되도록 복종한다.

물론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권한 자체가 자기에게 권위를 부여한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가 말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로 되는 것도 아니고, 책임있는 자리에 선출되었다고 해서 그가 전문가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책임자를 선출하는 것은 오직 공동목적을 위하여 사람들이 협조하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 목적 밖의 것을 명할 권한은 없다.

어떤 종류의 권위를 행사하고 있는가를 알아내기란 때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권위를 받아들이는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권위자의 의견이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이고, 우리가 권한을 가진 사람들을 따르는 것은 따르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
편집자 주:교황은 권한을 행사할 뿐 아니라, 신앙과 도덕에 관해서는 권위자로 보장받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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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디토·2014. 7. 12. 오전 10:27:02

이글을 쓴 이승욱이라늠 분과 쪽지를 나누며 의견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어딘지는 묻지 않았지만 교포 성당으로 신부님 문제로 골치를 앓으시는 경우이시더군요. 이글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잘된 글이기에 퍼왔습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