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

람베르토

주교 · 순교자

람베르토

(Lambert)

람베르또 · 람베르뚜스 · 람베르투스 · 램버트 · 랑베르 · 람베르트

9월 17일📍 마스트리흐트(Maastricht)🕰 +705년경

성 람베르투스(Lambertus, 또는 람베르토)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그는 633년에서 638년 사이에 플랑드르(Flandre) 지방 마스트리흐트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 지역이 이교 신앙이 강했던 곳이기에 그의 부모가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성인전에 따르면 성 람베르토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그 도시의 주교인 성 테오다르도(Theodardus, 9월 10일)에게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일부 자료는 성 테오다르도가 그의 삼촌이었다고 한다.

성 테오다르도는 성 람베르토에게 학문과 덕성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고, 종종 마스트리흐트에도 머물렀던 킬데리크 2세(Childeric II, 662~675년 재위) 왕의 궁정에도 데려갔다.

그리고 그에게 사제품을 주었다.

성 테오다르도 주교는 670년경 자신의 교구에 대한 억압과 약탈에 항의하기 위해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와 네우스트리아(Neustria)의 왕인 킬데리크 2세를 만나러 가던 중 암살자들에 의해 독일 슈파이어(Speyer) 근처 숲에서 살해당했다.

그러자 마스트리흐트의 성직자와 백성들은 그의 제자이자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성 람베르토를 후임 주교로 선출하였다.

성 람베르토는 프리슬란트(Friesland) 지역의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는 어려운 일을 맡았고, 전임자이자 스승인 성 테오다르도의 유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유해를 찾아 당시 뫼즈/마스강(Meuse/Maas R.) 기슭의 매우 작은 마을인 리에주(Liege)의 한 경당에 모셨는데, 나중에 리에주는 큰 도시로 발전했다.

성 람베르토는 격동의 시기를 살았는데, 675년에 킬데리크 2세가 암살당한 후 프랑크 왕국 네우스트리아의 궁정 재상인 에브로인(Ebroin)이 다시 권력을 잡았다.

그는 이전처럼 공포 정치를 펼치며 자신의 사람을 주교로 앉히고자 성 람베르토를 주교좌에서 쫓아냈다.

성 람베르토는 그 후 7년 동안 오늘날 벨기에 리에주 지방 말메디(Malmedy) 근처의 스타벨로(Stavelot) 수도원에서 귀양살이했다.

그는 수도원에서 금식과 기도를 실천하며 매우 겸손한 삶을 살았다. 681년에 에브로인 궁재도 평소 그가 괴롭혔던 다른 귀족에 의해 살해되면서 정치적 세력의 변화가 생겼다.

그러면서 강제 추방되었던 성 람베르토도 복권되어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다시 주교좌로 돌아왔다.

마스트리흐트로 돌아온 성 람베르토는 교구를 재정비하고 여전히 이교도였던 프리슬란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 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그 지역의 많은 성당이 후대에 그의 이름으로 봉헌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즈음 영국에서 네덜란드와 독일 북서부 해안지역에 사는 게르만족인 프리지아인(Frisians)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프리슬란트로 건너온 성 빌리브로르도(Willibrordus, 11월 7일)와 협력하며 선교 활동을 펼쳤다.

그 후 성 람베르토는 리에주로 이주했는데, 그곳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일설에 따르면 당시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였던 헤르스탈의 페핀 2세(Pepin II of Herstal, 680~714년 재위)가 정실부인을 버리고 아내의 동생인 알페이드(Alpaide)와 동거하며 간음한 사건을 묵인하지 않고 비판함으로써 알페이드의 형제에 의해 705년경 9월 16일에서 17일 사이 한밤중에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에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후대의 전승이고 초기 전승에 따르면, 교회 재산에 대한 세금 부과와 관련한 분쟁의 결과라고도 한다.

특히 지방 귀족들이 왕에 의해 성당 소유 재산에 대한 면세 특권이 부여되자 이에 격분해 주교와 갈등을 빚다가 살해했다고 한다.

즉 세금 문제와 그로 인한 갈등 중에 벌어진 혈족 간의 복수가 성 람베르토 주교 살해의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아무튼 암살자에 의해 살해된 성 람베르토는 곧 사람들로부터 순교자로 공경을 받았다.

그의 유해는 뫼즈강을 따라 마스트리흐트로 옮겨져 가족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런데 그가 순교한 장소에서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곳에 그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고, 성 람베르토의 후계자가 된 성 후베르토(Hubertus, 5월 30일)는 그의 유해를 통에런-마스트리흐트(Tongeren-Maastricht) 교구에서 그가 순교한 리에주로 옮기라는 환시를 보고 716년에 그의 유해를 이장하여 그를 기념해 건립한 성당에 안치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에 주교좌를 마스트리흐트에서 리에주로 옮겼다.

그의 유해를 모신 리에주의 생 랑베르(Saint-Lambert) 대성당은 주교좌성당이 되었고, 성 후베르토는 리에주 교구의 초대 주교가 되었다.

성 람베르토는 위대한 순교자이자 복음 선포자로서 벨기에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에 대한 공경이 확산하면서 특히 벨기에에 그에게 봉헌된 성당이 오늘날까지 144개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그는 페핀 2세와 알페이드의 관계를 단호하게 비판했기에 부부간의 정절과 신의를 지켜주는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17일 목록에서 리에주에서 마스트리흐트의 주교인 성 람베르토가 순교했는데, 그는 신앙에 대한 열정으로 왕실을 꾸짖었다가 죄인들의 손에 부당하게 목숨을 잃어 영원히 누릴 천상 왕국의 궁정에 들어갔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아우스트라시아의 리에주(오늘날의 벨기에)에서 마스트리흐트의 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람베르토의 수난을 기념하는데, 그는 한때 유배되어 스타벨로 수도원으로 물러났으나 주교좌로 복귀한 후 훌륭하게 사목 임무를 수행하다가 자신을 적대하던 이들의 무고한 희생양이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1건)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람베르토', 서울(일파소), 2023년, 770-772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