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치유 사랑하는 것은 상처받고 노여워지는 것을 무릅쓰는 것이다. 우리가 전혀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남들의 폭력, 이기심, 편견, 성에 대한 차별 , 그리고 다른 불의들을 미워할 정도로 사랑해야만 한다. 분노는 내가 직시하고 극복해야만 하는 두려움을 정확하게 지적해 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신앙적인 용서가 단지 미소짓고 있는 외관 뒤에 미움을 감추고 있는 반응 형성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를 알고 놀란다. 그러한 분노를 억제하는 것은 억제된 분노의 결과만을 거두어들이게 되는 것이다. 아픔을 느끼는 것이 신체적인 상처 때문에 받는 것과 같이 분노를 느끼는 것은 정서적으로 상처를 입는 데 대한 건전한 반응이다. 분노는 무엇이 해를 끼치는가를 알려 주며, 내가 그것을 치유하기 시작할 때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나 자신의 내부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약점조차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스도처럼 더 많이 사랑하도록 나를 성장시켜 준다. 사람을 사랑하면 할 수록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부족에 더 많이 상처받기도 하고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노여움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우리는 정신적 불구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대담하게 새로운 자유를 얻을 수도 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분노를 나누면서 그것이 분노의 치유에 도움이 됨을 발견한다. 그리스도야 말로 완전히 이해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박해를 받았고, 우리가 상처입은 모든 방법으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이 들어주시는 것 그 이상의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부정해 버린 모든 상처를 생각해내어 과거와 미래에까지 닿는 그분의 치유로써 모든 아픈 부분을 만져주실 수 있다. 그분은 그분의 사랑과 배려를 갈망하는 우리의 근심과 숨겨진 상처들을 알고 계신다. 그리스도께 내가 어떻게 분노를 느끼고 있는가를 말씀드리고 성서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 들어 보며 그리스도의 치유 응답을 받아들여 그 안에 머무르게 된다면 우리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처럼 우리의 모든 상처들을 치유받을 수가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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