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가리타 베이스

평신도 · 동정녀 · 3회원

성녀 마르가리타 베이스

(Marguerite Bays)

마가렛 · 마거리트 · 마거릿 · 마르가레타 · 마르가리따 · 마르게리타 · 마르그리트 · 말가리다 · 말가리따

6월 27일🕰 1815-1879년

성녀 마르가리타 베이스(Margarita Bays)는 1815년 9월 8일 스위스 서부 프리부르주(Fribourg州)의 시비리에즈(Siviriez) 교구에 있는 라 피에라즈(La Pierraz)라는 작은 마을에서 소박한 농부이자 열심한 그리스도교 신자인 조셉 베이스(Joseph Bays)와 마리 조세핀 모렐(Marie-Josephine Morel)의 일곱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나 다음날 세례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지능과 타고난 활력을 지닌 그녀는 샤반느레포르(Chavannes-les-Forts)에 새로 개교한 학교에 3~4년 정도 다니면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기도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그녀는 종종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기도의 고요함 속에 빠지곤 했다.

그녀는 8살이 된 1823년 8월 17일 시비리에즈 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았고, 11살 때 그곳에서 첫영성체를 했다. 15살 무렵부터는 수습생으로 재봉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평생 고향에서 재봉사로 일하면서 생활했다.

평소 신심 깊고 다른 이들들 잘 도왔던 성녀 마르가리타 베이스는 친구를 비롯해 많은 이로부터 수도자가 되라는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수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결혼하지 않고 동정녀로 살면서 가족과 본당에서 성덕을 쌓는 길을 택했고, 실제로 그렇게 평생을 보냈다.

그녀는 본당에서 모범적이고 열정적인 평신도로서 어린아이들의 신앙을 돌보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방문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던 가난한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그리고 본당에 선교 활동을 도입하고 가톨릭 언론의 확산을 위해 미력하나마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녀의 오빠와 여동생들은 그녀에게 깊은 애정을 쏟았다.

성녀 마르가리타 베이스는 바느질, 요리, 집안일 등 가정에 필요한 모든 것을 돌보았고, 덕분에 가족 간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소한 의견 충돌에도 불구하고 화기애애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다.

성녀 마르가리타 베이스는 자신의 집에서든 일을 위해 방문하는 집에서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함께 묵주기도를 한두 단이라도 바치자고 권하였다.

그녀는 매일 아침 본당에 가서 미사에 참례하는 것을 삶의 가장 큰 기쁨이자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다.

특히 축복과 기도의 날인 주일에는 미사 후 성당에 남아 성체 앞에서 기도하고, 한 시간 동안 십자가의 길 기도와 묵주기도를 바쳤다.

그녀는 또한 혼자서든 친구들과 함께든 성모 마리아의 성지를 순례하는 길고 험난한 여정을 즐겼는데, 검은 성모상을 모시고 있는 스위스 아인지델른(Einsiedeln) 수도원을 11번이나 순례했다고 한다.

그녀는 순례를 통해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심을 느끼고 기도로써 그 느낌을 키워나갔다.

그녀는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도덕과 신앙생활을 지도하는 적극적인 사도직 활동을 실천했고, 동시에 젊은 여성들이 미래에 아내와 어머니가 될 역할을 충실히 준비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험담과 비방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보지 못한 것은 말하지 말고, 본 것은 침묵하라.’라는 말씀을 황금률처럼 실천했다.

그녀는 35살의 나이에 암에 걸려 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녀는 성모 마리아께 자신을 치유해 주시고, 예수님의 수난에 더욱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다른 고통을 겪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녀의 기도는 1854년 12월 8일,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가 로마에서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리를 선포하는 순간 기적적으로 치유되면서 완전히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고, 고난받는 그리스도와 영원히 연결되었다.

불가사의한 병으로 그녀는 매주 금요일 오후 3시와 성주간 내내 황홀경에 빠져 움직일 수 없었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타 언덕까지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을 몸과 마음으로 생생하게 체험했다.

십자가형의 오상 성흔(五傷 聖痕, Stigmata)이 그녀의 몸에 나타나 극심한 고통을 주었지만, 그녀는 호기심 어린 구경꾼들로부터 성흔을 조심스럽게 숨겼다.

프리부르 교구의 주교는 황홀경과 성흔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의학적 조언을 요청했고, 그 결과 이 모든 현상의 신비로운 기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1860년 2월 22일, 그녀는 현재 재속 프란치스코회인 프란치스코회 제3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그해에 오랫동안 가족 농장을 맡아 운영해 온 그녀의 오빠 클라우디오(Claudio)가 농장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조제트(Josette)와 결혼했는데, 조제트는 갑자기 안주인이 되면서 올케에 대한 적대감과 몰이해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조제트는 시누이인 자신은 들판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데, 올케는 방에서 바느질하거나 조용히 기도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게으른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성녀 마르가리타 베이스는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침묵과 인내로 참아내며 누구에게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모욕을 기쁘게 참아낸 덕분에 결국은 시누이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다.

성녀 마르가리타 베이스는 몸에 밴 그리스도인의 자비심으로 병상에 누워 임종을 앞둔 시누이를 정성껏 돌봐주었다.

성녀 마르가리타 베이스는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점점 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녀는 불평 한마디 없이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그 모든 고통을 견뎌냈다. 1879년 사순시기에 그녀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하였다.

그녀는 예수 성심 대축일에 선종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녀의 기도대로 1879년 6월 27일 예수 성심 대축일 오후 3시에 세상을 떠났다.

시비리에즈와 주변 지역의 신자들은 그녀의 선종 소식을 듣고 “우리의 성녀가 돌아가셨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장례식은 6월 30일에 거행되었고, 수많은 사제와 신자들이 참석해 애도했다.

그녀의 시신은 시비리에즈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나중에 본당으로 이장하여 오늘날까지 성 요셉 경당에 안치되어 있다.

그녀의 성덕에 대한 명성은 계속해서 퍼져나갔고, 1927년에 프리부르 교구에서 시복시성 절차를 시작하였다.

그녀의 영웅적 덕행과 기적 심사가 통과되어 1995년 10월 2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그리고 1998년에 있었던 또 다른 기적에 대한 심사가 통과한 후 2019년 10월 13일 주일,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 의해 다른 네 명과 함께 시성되었다.

교황은 시성식 강론을 통해 재봉사인 성녀 마르가리타 베이스가 우리에게 단순한 기도, 인내, 침묵을 통해 자기희생의 힘을 보여주었고, 주님께서는 그녀의 겸손함을 통해 부활을 영광을 보여주셨다고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27일 목록에서 스위스 프리부르 지역에서 성녀(당시에는 복녀) 마르가리타 베이스가 집안에서 재봉 일을 하면서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것을 채워주는데 헌신했다고 기록하며 그녀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