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
복자 아우구스티노 카조티치
(Augustin Kazotic)
아오스딩 · 아우구스띠노 · 아우구스띠누스 · 아우구스티누스 · 아우구스틴 · 어거스틴 · 오스틴 · 카소티 · 카조티크
복자 아우구스티누스 카조티치(Augustinus Kazotic, 또는 아우구스티노 카조티치)는 1260년경 달마티아(Dalmatia)의 역사적인 해안 도시인 트로기르(Trogir,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도시)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스플리트(Split)에서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들과 함께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15살 또는 20살에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스플리트에서 몇 년을 보낸 후 학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1286년에 프랑스 파리(Paris)로 파견되었다.
그는 이듬해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뒤로는 여러 곳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보스니아(Bosnia)와 헝가리 왕국에 만연한 이단과 맞서 싸우는 데 헌신하며 뛰어난 성덕과 판단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296년에 도미니코 수도회 총장이 되고 헝가리 주재 교황 특사로 온 니콜로 보카시니(Niccolo Boccasini) 추기경을 만나 깊은 우정을 쌓았는데, 그 추기경은 1303년 10월 22일 교황 복자 베네딕토 11세(Benedictus XI, 7월 7일)로 즉위하였다.
평소 복자 아우구스티노 카조티치의 성덕과 지혜를 눈여겨본 교황 복자 베네딕토 11세는 교황좌에 오른 1303년에 그를 오늘날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주교로 임명하고 직접 주교 축성식을 집전했다.
그가 부임했을 당시 자그레브 교구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의 전임 주교들은 이단과 역병 그리고 왕위 계승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귀족들의 오만함으로 인해 황폐해진 교구의 피해를 수습하고자 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즉시 교구 개혁을 시작했는데, 먼저 성직자 개혁과 교육을 강화하고 여러 차례 시노드를 개최했다.
그리고 주교좌 도시에 도미니코 수도회를 설립하고 학문과 성경 연구를 장려하였다.
그는 또한 학교와 도서관을 설립하고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수입을 나누어 주었다.
그에게는 치유의 은사가 있어서 많은 주민을 구했고, 여러 가지 놀라운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1312년 자그레브 대성당을 건설할 당시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었는데, 그의 기도 덕분에 수도원 마당에서 샘물이 솟아났다고 한다.
이 샘물은 오늘날 자그레브 중심부인 반 옐라치치 광장(Ban Jelacic Square)의 만두셰바츠(Mandusevac) 분수로 남아있다.
복자 아우구스티노 카조티치는 자그레브의 주교로서 20여 년을 열정적으로 사목하며 귀족들의 폭정에 맞서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노력했다.
그로 인해 왕의 눈 밖에 나게 되었고, 1317년에 주교 사절단을 이끌고 교황을 만나러 아비뇽(Avignon)으로 갔다가 왕의 반대로 교구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교구로 돌아가기 위해 아비뇽의 교황청에서 4년을 기다렸는데, 그동안에 크로아티아 출신 최초의 신학자 중 한 명이었던 그는 두 편의 논문을 통해 두각을 나타냈다. 1322년에 교황 요한 22세(Joannes XXII)는 복자 아우구스티노 카조티치 주교를 이탈리아 동남부 풀리아(Puglia) 지방의 작은 마을인 루체라(Lucera)에 가서 사목하도록 했다.
당시 루체라는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사라센의 지배로부터 막 해방된 곳이었다.
그는 루체라에 그리스도교를 재건하는 임무를 맡아 신자들을 만나기 위해 걸어서 여러 곳을 방문하고, 그곳에 남은 사라센인의 개종을 위해서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복자 아우구스티노 카조티치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형제들 곁에서 임종하고자 루체라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으로 들어가 1323년 8월 3일 선종하였다.
트로기르 도미니코 수도회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존재에 거부감을 느낀 어느 사라센인의 공격으로 상처를 입어 사망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루체라의 도미니코 수도회에 묻혔다가 나중에 루체라 대성당으로 옮겨 안치하였다.
그의 두개골 유해에 자상으로 인한 흔적이 있었는데, 이는 사라센인의 공격에 의한 것이거나 그 이전에 학업을 위해 파리로 가던 중 파비아(Pavia) 근처에서 반대 귀족이 보낸 암살자들의 공격으로 동료가 살해되고 그 역시 큰 상처를 입었던 사건의 결과로 보기도 한다.
그는 1700년 7월 17일 교황 인노첸시오 12세(Innocentius XII)의 칙서를 통해 시복과 함께 공경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2013년 루체라 교구에서 그의 시성을 위한 절차를 재개한 상태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3일 목록에서 풀리아의 루체라에서 설교자회 소속이었던 복자 아우구스티노 카조티치 주교를 기념하는데, 그는 처음에는 자그레브 교구에서 사목하다가 달마티아 왕의 적대감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고 루체라 교구에 와서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다고 기록하며 그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자그레브의 복자 카조티치는 루체라의 복자 카조티치로도 불린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