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니오 아폴리나리스

주교 · 시인

시도니오 아폴리나리스

(Sidonius Apollinaris)

시도니우스 · 아뽈리나리스

8월 21일📍 클레르몽(Clermont)🕰 +479년경

성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또는 시도니오 아폴리나리스)는 430/432년경 프랑스 중동부의 리옹(Lyon)에서 갈로로망(Gallo-Roman)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다.

그는 아를(Arles)에서 수사학과 고전을 공부했고, 비엔(Vienne)의 주교인 성 마메르토(Mamertus, 5월 11일)의 동생으로 신학자인 클라우디아누스 마메르투스(Claudianus Mamertus)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450/452년경에 몇 년 뒤에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아비투스(Avitus, 455~456년 재위)의 딸인 파피아닐라(Papianilla)와 결혼함으로써 갈리아 지방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의 사위가 되었다.

장인인 아비투스가 서고트족과 갈리아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황제로 선포된 후에 그 또한 궁정 시인으로서 황제와 함께 로마(Roma)로 갔다.

그는 새 황제를 칭송하는 시를 지어 인정받았으나 그 영화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비투스 황제가 피아첸차(Piacenza)에서 마요리아누스(Maiorianus) 연합군에게 패하고, 성 시도니오 아폴리나리스가 장인을 대신해 리옹을 중심으로 한 반란에 가담했으나 그 또한 실패하였다. 457년 새 황제의 등극과 함께 성 시도니오 아폴리나리스도 역사에서 사라질 줄 알았으나 마요리아누스 황제(456~461년 재위)는 그를 관대하게 대우하였다.

그는 황제를 위한 찬가를 지었고 특히 아프리카 반달족에 대항한 그의 결단력을 칭송하였다.

하지만 마요리아누스 황제가 그와 연합했던 게르만족의 리키메르(Ricimer) 장군에 의해 살해되고 유약한 리비우스 세베루스 황제(461~465년 재위)가 즉위하자 모든 공직에서 떠났다.

그는 오베르뉴(Auvergne) 지방의 아르베르니스(Arvernis) 근처 아비타쿰(Avitacum)에 있는 자신의 별장으로 은퇴하였다.

그는 서고트족의 왕 테오도리크 2세(453~466년 재위)를 지지하며 툴루즈(Toulouse)에 있는 궁정을 자주 방문하며 학구적인 즐거움에 빠졌다. 467년에 새로운 황제로 안테미우스(467~472년 재위)가 선출된 후 그는 갈로로망 대표단의 일원으로 로마로 가서 제국의 부흥을 위해 새 황제를 기리는 찬가를 낭송했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 468년에 로마시(市)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1년 만에 로마의 총독직을 떠나 갈리아로 돌아와 지내던 그는 471년에 오베르뉴 지방의 중심 도시인 아르베르니스의 주교가 선종한 후 그의 후임으로 선출되었다.

아르베르니스는 9세기에 클레르몽이란 이름을 얻었고, 오늘날에는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으로 불리는 도시이다.

그는 정치적 이유로 자신이 선출되었음을 알았으나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그는 아내와 떨어져 지내고 모든 세속적인 생활을 포기하며 더욱 단순한 생활을 시작했다.

자신이 소유한 재산 대부분을 수도원과 자선 사업에 기부하고, 대기근으로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서 온 수천 명의 난민을 지원하여 교회의 애덕을 증명하였다.

그는 473년부터 3년 동안 테오도리크 2세의 후계자인 에우리크(466~484년 재위)가 이끄는 서고트족의 공격으로부터 클레르몽을 방어해야 했다.

클레르몽이 정복되고 잠시 투옥되어 추방되기도 했으나 다시 돌아와 주교직을 이어갔다.

그는 또한 아리우스주의(Arianismus)를 선호하는 에우리크에 맞서 가톨릭 주교들을 지원하였고, 성경 연구에도 힘쓰며 뛰어난 설교가이자 저명한 시인으로서 많은 시와 편지를 남겼다.

성 시도니오 아폴리나리스는 479년경 또는 그보다 더 뒤에 8월 23일 또는 21일에 클레르몽에서 선종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봉사와 로마 제국에 대한 봉사를 결합하고자 했던 고대 갈리아 문화의 마지막 대표자였다.

그의 저작물은 문학적 수준이 높으며 고대 후기 갈리아 역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23일 목록에서 오베르뉴의 클레르몽에 학문과 성덕으로 유명한 성 시도니오 주교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21일 목록으로 옮겨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 지역의 클레르몽페랑에서 로마의 총독이었던 성 시도니오 아폴리나리스가 그 도시의 주교로 서품되었고, 신학과 세속 학문 모두에 정통한 보편적 아버지이자 저명한 학자로서 용기를 갖고 야만인의 잔인함에 반대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선종 시기는 479년경으로 보았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