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 · 교회학자
성 베드로 가니시오
(Peter Canisius)
가니시우스 · 베드루스 · 카니시오 · 카니시우스 · 페드로 · 페트루스 · 피터
성 페트루스 카니시우스(Petrus Canisius, 또는 베드로 가니시오)는 1521년 5월 8일 네덜란드 동부 네이메헌(Nijmegen)에서 아홉 차례나 시장으로 선출된 야곱 카니스(Jacob Kanis)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 베드로 카니스(Petrus Canis)로도 불리는 그는 법률가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독일의 쾰른(Koln) 대학교로 갔으나, 그 대학의 저명한 교수이며 예수회 회원이던 성 베드로 파브르(Petrus Faber, 8월 1일) 신부의 영향을 받아 신학으로 전향하고 1543년에 네덜란드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산을 모두 나눠 준 후 1546년 25살의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된 후 그는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교로 유명해졌다.
그는 1547년 트렌토(Trento) 공의회의 여러 회의에 참석했고,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가 시칠리아(Sicilia)의 메시나(Messina)에 설립한 예수회의 첫 번째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러던 중 바이에른(Bayern)의 빌헬름 4세 공작이 그곳의 프로테스탄트들을 물리치고 가톨릭을 재건하기 위하여 그의 도움을 요청하자 1549년에 잉골슈타트(Ingolstadt)로 갔다.
그는 이와 비슷한 일을 오스트리아의 빈(Wien)에서도 수행했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면서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성 베드로 가니시오는 오랫동안 프로테스탄트에 대항하여 가톨릭의 신앙을 옹호하는 일을 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신자들이 교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1555년 빈에 머무는 동안 그는 독일어권 신자들을 위해 독일어로 교리를 알기 쉽게 풀이한 “그리스도교 교리대전”(Summa Doctrinae Christianae)을 집필했다.
그가 독일어 교리서의 첫판을 출판하자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즉시 15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고 1558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소 교리문답집”(Catechismus minimus)을 출판하였다.
그는 1556년에 프라하(Prague)로 파견되어 그곳에 새로 짓는 대학교를 위해 일하는 동안에, 남부 독일과 보헤미아(Bohemia) 그리고 오스트리아로 구성된 새로운 관구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독일 전역을 순회하며 강의와 설교를 계속하고, 프로테스탄트와 논쟁과 강연을 통해 많은 이들이 다시 가톨릭 신앙으로 되돌아오도록 했다.
또한 여러 개의 대학을 설립하고 그가 설교하는 도시의 가톨릭을 부흥시켰으며, 폴란드에 예수회를 널리 보급한 장본인이었다. 1559년부터 1568년 사이에 그는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주교좌 대성당의 대표적인 설교자로 활동하였다.
그는 아주 정열적인 사람으로 30년 동안 도보로 또는 말을 타고 32,000km를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가톨릭의 부흥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 뒤로도 그는 독일의 딜링엔(Dillingen),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Innsbruck)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칼뱅파가 다수인 스위스의 프리부르(Fribourg)에서 선교사로서 끝까지 교육과 집필에 전념해 시민 대부분을 개종시키는 데 성공하고 1597년 12월 21일 그곳에서 교리서를 손에 들고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처음에 프리부르의 성 니콜라오 대성당에 묻혔다가 그가 설립하고 생애 마지막을 보냈던 성 미카엘 예수회 대학으로 옮겨 그곳 성당 제단 앞에 안치하였다.
그는 현대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조차 ‘고상한 예수회 회원’, ‘결점 없는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 평할 만큼, 트렌토 공의회에 연이어 일어난 가톨릭 재건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또한 당시 논객들 가운데에서 가장 예의 바르고 올바르며 예리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일찌감치 펜과 신문의 영향력을 간파했기 때문에 모든 인쇄업자와 출판사에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는 교리서뿐만 아니라 성인전, 성경 주석학, 호교론, 수덕 신학 분야에서도 저술 활동을 이어갔고, 교부 문헌에 관해서도 연구와 저술을 계속했다.
종교 개혁 이후 가톨릭의 재건에 힘쓴 그는 독일어권에서 보통 ‘독일의 사도’로 불리는 성 보니파시오(Bonifatius, 6월 5일)의 뒤를 잇는 ‘독일의 두 번째 사도’로 불리는데, 이는 1897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가 그의 선종 300주년을 기념하는 회칙(Militantis ecclesiae)에서 사용한 표현이다.
성 베드로 가니시오는 1864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25년 5월 21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면서 처음으로 동시에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그의 축일은 1926년 로마 보편 전례력에 포함되면서 4월 27일을 전례적 기념일로 정했다.
그 뒤로 1969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전례력 개정 이후 그가 선종한 날인 12월 21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다.
일부 지역과 예수회에서는 예전과 같이 4월 27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2월 21일 목록에서 예수회 신부이자 교회 박사인 성 베드로 가니시오가 독일로 파견되어 유명한 교리문답을 포함한 저서와 설교로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고 강화하기 위해 헌신하다가 스위스의 프리부르에서 선종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베드로 가니시오는 가톨릭 청소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기에 독일 가톨릭 학교 협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5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베드로 가니시오 사제 학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73-377쪽.
- 조지프 틸렌다 저, 박병훈 편, 예수회 성인들 - 예수회 고유미사에서 기념하는 성인과 복자의 약전, 서울(도서출판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4년, 102-106쪽.
- 페르디난트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베드로 가니시오 성인',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264-269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권 - '가니시오, 베드로',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4년, 13-14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베드로 카니시오 사제 학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315-317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